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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윤 Aug 03. 2023

타인을 신경쓰지 않을 용기

눈치보는 삶

 내가 나온 대학은 규모가 작아 연예인을 부르기에는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춤 동아리 혹은 음악 동아리 학생들이 연예인 대접을 받는 학교였다. 해당 동아리도 이를 알기에 동아리원을 모집하는 개학 시즌이면 좀 더 외적으로 우수한 신입생을 선발하였고, 얼마 있지 않은 교내 공연을 위해 방학도 포기하며 연습에 매진하였다. 대학 축제 행사에서 마지막 행사이자 메인 행사는 당연히 동아리 공연이었고 이를 보러 축제에 참여하는 학생도 여럿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친구와 함께 캔맥주를 들고 야외 원형 극장의 남은 자리 중 무대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앉아 동아리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공연 인터미션을 이용하여 이벤트를 진행하는 시간이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오는 인원 순서에 맞추어 번호표를 주었는데 동아리 측에서 무작위로 부른 번호에 해당하는 번호표를 가진 학생은 무대에 나와 상품을 받아 가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행사를 진행하는 MC의 입에서 자기 번호가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설마 내 번호가 나올까 걱정하였고 그런 순간이면 항상 내 슬픈 예상은 적중하였다. 138번! 내가 가진 번호를 부른 것이었다. 모두 행운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내 번호를 알고 있는 친구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지만 나는 귓속말로 제발 모르는 척해달라고 부탁하며 숨죽이고 아래만 보고 있었다.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인 진행자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른 번호를 호명하였다. 그제야 신호등처럼 빨갛던 얼굴과 터질 것처럼 쿵쾅대던 심장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렇듯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에 늘 자신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감이 없었기에 어떤 사건이 원인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중 앞에 서는 게 안 부끄러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 여기는 사람도 꽤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타인 앞에 서는 게 싫은 정도를 떠나 무섭게 느껴진다. 타인의 시선은 마치 바코드처럼 느껴져 나의 한마디 한 동작 놓치지 않고 모든 걸 담아내고 분석하는 것 같다. 스캔을 마치고 나온 결과가 혹여나 불합격일까 두려워 최대한 나를 가리기 바빴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두려운 것보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물다섯이라는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입대하게 되었다. 부대에 있는 선임부터 후임까지 2명을 제외하면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심지어 나보다 어린 간부도 꽤 여럿 있었다. 동생들 앞에서 민망한 상황을 겪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책잡히지 않으려 군 생활을 열심히 했었다. 훈련이나 작업에 열외 없이 참여하고 남들이 하기 싫은 식당 청소는 항상 자원해서 참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대에 무난하게 녹아들고 싶었다. 부대에 같이 전입해 온 동기는 총 4명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동기가 있었다. 팔에 문신이 가득했고 목도 얼굴만큼 두꺼워 인상이 강하게 남았는데 행동도 남달랐다. 작업이나 훈련을 빠지려고 항상 꾀를 부렸고, 늦잠을 자서 아침 점호에 늦게 나오기 일쑤였다. 틈만 나면 꾀병을 부려 일과를 빼려고 애썼으나 꾀가 능숙하지 못해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었다. 그 동기 앞에 선 새빨개진 얼굴의 당직사관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 동기는 선임들이나 간부님들께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본인의 소신을 지켜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의 모습에 적응이 될 즘 가끔은 그런 모습이 엉뚱하게 느껴져 폭소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였다.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 모르겠지만 전역할 때까지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던 건 그 친구였다.


 최근에 그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보다 3살이나 어리면서 먼저 결혼한다며 투덜대며 참석한 결혼식에서 가장 놀랐었던 건 하객 중 군대에서 사귄 사람들이 꽤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서로 근황을 나누기도 하고 군대에서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며 각자만의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현하였다. 준비한 혼인 서약을 읽다가 즉흥적으로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는 자기 목 두께만큼은 안 닮았으면 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여전한 그 친구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결혼식을 마치며 나는 어쩌면 그 친구를 통해 대리만족 혹은 부러움을 느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극단적이긴 했지만,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려기보다 늘 자신에게 맞추어 살았던 그 친구의 표정은 늘 여유로워 보였다. 사실은 하객으로 찾아와준 군대 동기나 선·후임이 그 친구와는 서스럼없을지 몰라도 나는 조금 서먹했다. 돌아오는 버스 창에 비친 조급한 표정의 나를 보며 그때 그 축제 공연무대에 올라가 미국 춤이라도 췄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았다. 조금은 타인을 신경을 쓰지 않을 용기를 갖기로 했다.


나보다 어린 동기가 먼저 결혼하는 것보다 나는 언제 결혼하냐고 놀리는 다른 동기들의 말이 더 부들부들거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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