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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재 Aug 03. 2023

용기의 상대성

   나는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벌점이 쌓이면 벌점 해소 수단으로 주말에 학교 근처 산의 정상을 찍고 와야 했다. 이렇게 해도 해소되지 않을 정도로 벌점이 쌓인 학생들은 방학이면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등산은 나에게 더 이상 취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겪은 뒤로 캠핑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마 내가 산을 오른다면 그건 필히 힘든 일이 있거나 굳은 결심이 필요할 때 본인을 각성하기 위해 혹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르지 않을까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롤모델은 김재수 대장이다. 그는 한국 여성 산악계의 전설이었던 故고미영 대장의 등반 매니저이자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는 그의 ‘용기’를 닮고 싶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는 거센 눈보라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눈사태로 프로 산악인들도 목숨을 잃게 만드는 위험한 산맥이다. 실제로 본인도 자칫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사고도 몇 번 겪었고 그 고행을 같이했던 동료들도 여럿 잃었기에 그 산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산에 오르는 그는 감히 초인인가 싶었다.


 롤모델을 정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롤모델은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의미를 전제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나는 겁이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갈 때도 오두방정 떨며 주변 친구에게 후기를 물어보러 전화를 돌리고 검사를 받는 순간에도 콧속에 들어오는 면봉이 무서워 슬쩍 머리를 뒤로 빼고 만다. 주사를 맞을 일이 있으면 항상 하는 말은 “안 아프게 놔주세요.”이다. 그래도 불안하기에 주사 맞는 장면을 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외에도 여러 사례로 내가 겁이 많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를 닮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많았었다. 당장 동네 산도 못 오르는 내가 어떻게 히말라야에 오르는 그와 같아질 생각을 하겠는가. 어쩌면 평생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없으리라 여겼다.


 얼마 전 직장 사람들과 회식이 있었다. 회식 장소는 차가 많이 몰리는 곳이었는데 도착해보니 역시나 주차 자리가 없었다. 한 차주는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하고 갓길에 주차한다는 게 운전이 미숙한지 갓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유유히 카페에 들어갔다. 좁은 길이라 다른 차들이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애를 먹고 있기에 지켜보다 못해 결국 차주에게 다가가 주차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건네고 돌아왔다. 차주는 팔에 문신이 그려져 있고 체격이 큰 편이라 자칫 공포감을 일으키는 인상이었는데 동료들은 그런 나를 두고 대단한 사람인 양 치켜세워주었다. 평소에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하는 편이라 조금 보복이 두렵긴 했지만 큰 고민 없이 한 행동이었기에 기대보다 많은 칭찬이 들어와 기분이 좋으면서 한편 ‘좀 오버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문득 생각해보니 어쩌면 ‘용기’라는 건 상대적인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발표하는 걸 두려워하지만 발표하는 게 숨 쉬듯 쉬운 사람도 있고, 인상이 험악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게 어느 사람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생각 없이 수행하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겐 큰 결심이 필요한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마다 ‘용기’의 기준은 다르게 두어야 공평하지 않을까?


 개그우먼 장도연이 말했다. 대부분 사람은 히말라야를 평생 발 디딜 일 없는 미지의 고난이라 여기지만 어쩌면 각자 가지고 있는 목표 중 가장 어려운 목표가 그들 앞에 주어진 그 산일 것이라고. 그 말대로라면 모두 형태는 다르지만,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각자의 8,000m 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산을 오를지 그저 관망할지는 우리들의 선택이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고역을 견디며 한 걸음 한 걸음 끊임없이 그 산을 오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그 산은 글쓰기이다. 나날이 주변에 예민해지고 잠도 제대로 못 자기도 한다. 애써보지만 하면 할수록 본인의 한계가 명확해지는 것 같고 희미하지만, 잠재력이라고 믿었던 그때가 더 나았겠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도 왜 이 산에 오르는지 이성적인 사유를 들기는 힘들다. 그저 매일 조금 더 ‘용기’를 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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