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말 한마디와 쨍한 햇살
아침이 밝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이제는 어제의 벌레 소동을 스스로 마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함이 몰려왔다. 토요일이라 학교 수업도 없었고, 친구도 외출을 해야 했기에 나는 늦은 아침 나의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방 문을 여는 순간, 어디선가 벌레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은 어제처럼 조용했지만, 그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책상과 창틀, 바닥 여기저기에 벌레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커튼 뒤에 숨어있던 곰팡이까지 발견했다.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이로 창문 틈에 물이 고여 있었는데 이게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잠들 수 없다는 판단에, 급히 근처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관광지보다는 주거지가 중심이라 마땅한 숙소를 찾기 어려웠고, 겨우 찾은 한 호텔은 절반이 넘는 후기가 침대에 베드버그가 있으니 이 호텔에서 머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좌절했고, 커져가는 불안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멘탈이 나가있었다. 결국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을 삼킨 채로 다른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오늘 하루만 네 기숙사에 있어도 될까?”라고 물었다. 다행히 친구는 망설임 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짐을 챙겨 그 친구의 기숙사로 향하는 길, 나는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영국의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햇살이 퍼져 있었고, 주말 시내는 여유와 웃음으로 가득했다. 지금껏 기숙사 문제와 학교 생활에 지쳐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는데, 햇살 아래 걷는 거리와 평온한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친구의 기숙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쯤이었기에 친구와 함께 시내 카페와 쇼핑몰로 기분 전환을 나섰다. 한국에선 별다를 것 없는 카페였겠지만, 이곳에서는 따뜻한 핫초코 한 잔이 내 마음을 부유하게 만들어주었다.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디고 있는 나에게, 그 순간만큼은 햇살과 핫초코, 그리고 친구의 온기가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