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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May 26. 2021

노인과 버스

따뜻 말고 뜨뜻이요, 아니 뜨듯-

교직에 있고, 육아시간을 쓰기 때문에 나의 퇴근 시간은 3시쯤이다. 오후 3시, 햇빛을 잔뜩 머금은 꼿꼿한 나무도 머리를 바닥에 뉘어 잠들고 싶어 하는 시간. 이 시간은 버스에 사람이 가장 없는 한적한 시간이기도 하다.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 나른한 오후의 빛이 유리창을 시리게도 뚫고 들어오고, 열어둔 창문에서 들이치는 바람만이 버스를 죄 채우는, 나는 그 풍경이 정말 좋다.


어제도 그러했다. 오전 내 내리던 비가 그치고 쨍한 해가 구름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버스는 고요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당장 집에 가서 아이를 봐야 하니, 사실상 나의 마지막 자유시간이기도 했다.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이며, 하나라도 더 듣고 싶은 노래를 찾으려는 생각에 손가락이 바빴다. 그 사이에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다.


눈앞에서 아롱거리는 어딘지 느린 발걸음. 아,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나는 노인들이 버스를 탈 때면 마음이 무겁다. 내 경험상 버스는 느린 사람의 걸음을 잘 배려해주지 않았다. 뒷문에 '하차 시 문이 열리면 일어나 주세요.' 하는 스티커가 무색할 만큼, 버스는 단단한 다리로 빨리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행동했다. 출발과 정지가 많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제 몸을 움직이는 바퀴 달린 사각형은 늘 덜컹거리고 위험했다.


할머니는 계단을 오르자마자 기사님 바로 앞에 있는 자리에 앉으셨다. 그 좁은 통로를 빠르게 걸어가 뒷문 근처의 좋은 자리에 앉기란 매우 어렵다는 걸 아시는 분 같았다. 그때, 기사님이 "할머니"하고 불렀다.


"버스 출발 안 할 테니까, 뒷문 근처 가서 앉으세요. 천천히 조심히 가세요."


아, 하루 종일 날 서 있었던 마음이 저 문장 하나로 스멀스멀 녹아내려간다. 누구라도 스치면 베어버리겠다는 듯이 벼르던 것이 이토록 힘없이 무너질 때면, 나는 생각한다. 저 사람이, 저 말이 나를 또 한 순간 구했다고. 마음대로 구했다고. 나는 마음대로 구해져 버렸다고. 그래서 내일을 살아갈 힘을 감히 받아버린다고.


그 따뜻했던 것이, 아니. 뜨뜻. 아니 아니. 뜨듯-했던 것이 무척이나 좋아 여러 순간 곱씹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것은 내 온도가 된다. 배워야 할 마음이 많다. 배워서 베풀어야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아온 누군가에게 그 기사님의 한마디 같이.


덧) 그렇다고, 버스기사님들은 비난하는 건 아니다. 버스기사님 바로 뒤에 앉으면 볼 수 있는 작은 모니터. 앞차와 뒤차의 간격을 쉼 없이 보여주는 작은 태블릿을 본 적이 있다. 숨이 컥 막혔다. 분 단위로 움직이는 숫자들의 노예가 된 느낌. 게다가 종점에서 종점까지 화장실 한 번 갈 수나 있나, 화장실을 가지 못하니 목마르다고 물이나 맘껏 마실 수 있나. 그리고 여러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마저 느낀 적이 많지 않을까. 내 상처 먼저 보듬어야 마땅하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그 마음, 백번 천 번 이해하고 말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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