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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효원 Jan 28. 2022

고작 2주

언니를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한 시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결국 뇌전이까지 되었고

남은 시간이 1년이라고 했다.

언니가 내려가고 싶어 한다고

나에게 언니를 돌봐주라고 했다.


유방암 선고를 받은 지

1년 6개월 만에 일이었다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언니가 집으로 왔을 때.

남은 1년이라는 기간이

내가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고작 2주 만에

그 결심은 산산이 무너졌다.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듬은 점점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어렵게 가진 내 평범한 일상이

언니로 인해 무너진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죽어가는 언니를 앞에 두고

힘들어하는 내가 미웠다.

웃고 있을 때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하루하루 다르게 쇠약해지던 언니의 모습을 보며

나도 같이 무너져 내린 시간.


그리고 마지막 동맥 내 항암 후 입원한

요양병원에서 두 달이

 내가 언니와 작별할 수 있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도 나를 바라보던 언니의 얼굴이 선하다

“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도 울고 언니도 운다.



언니의 고백,

그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를 많이 원망했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자식들이라며

서로를 위로했었다.


 각자 살 수 있는 방식대로 살았었다.

 살기 바빴다.

 투병생활 중에도 언니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했었다.


결국 엄마가

 떠나기 하루 전 병원에 왔을 때.

언니는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던 걸까?


엄마를 보자마자 꺼져가는 숨을 몰아쉬며

한 글자 씩 내뱉던 첫마디

“엄 마 미 안 해”


가족들에게 더 사랑한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던

유서 속에 언니의 글.

죽음 앞에서 미움 대신 용서를 택했던 언니

 

살기 바빠 같은 지역에 살아도

자매 셋이서 여행 한번 간 적이 없었다.

 병을 얻고 나니 못해본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갔었다.


 같이 찍은 사진이라고는

암이 자라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다 같이 웃으며 찍었던 1년 전

아빠 유골함 옆에 넣은 액자에 사진이 전부였다.

 




끝이 가까워 올수록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쓰다듬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얼굴을 비볐다.


 이제껏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힘든 시간도

결국엔 다 지나간다.


최선을 다해 병간호했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돌아보니

고작 2주였다는 생각에


오늘 밤 문득

그때의 힘듬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인생에 가장 슬픈 일은

그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후회하며 돌아보는 것이다.


그때 가서 당신이 더 많은 것을 하고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봐야 소용없다.

-로빈 샤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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