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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효원 Jan 21. 2022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아버지는 유난히 텔레비전을

가까이에서 보셨다.


“눈 나빠진다고 가까이 보지 말라면서

아빠는 텔레비전 속에 들어가겠네.”

“나도 보고 싶은데...”


화면 반쯤 가린 아버지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좋아해서

가까이에서 보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버지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5학년쯤 알게 되었다.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 을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런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장난을 치려다 당황한

나는 아버지를 큰소리로 불렀다.

 "아빠 아빠!"

그제야 내 목소리를 알아채신 아버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아버지는 어릴 적 유복자로 태어나셨다.

힘이 좋아서 씨름판에 나가면

송아지를 타 오셨다는 친할아버지

     (유일하게 아는 할아버지 이야기다.)

     

아들의 출산을 한 달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했고

7살 많았던 고모가 아버지를 업고 길러 주셨다.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내다 보니

아버지는 중학교 시절 영양실조로

시신경이 말라 시각장애 판정을 받게 되셨다.


젊은 시절 나팔바지를 입고

스카프를 두른 잘생긴 얼굴.

포마드 머리에 폼을 잡고 찍었던 앨범 속에

 흑백사진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릴 적 나는

 사진 속 조각 같이 잘생긴  

아빠가 좋았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시각 장애를 알고 나니.

 무슨 일을 하건 힘들어 보였고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왜 밥 먹을 때

가까이 있는 음식만 드셨는지.

멀리 있는 음식은 손도 안 댄 건지 알게 되었다.


동전을 눈 가까이 대고 구분하던 모습도

그제야 이해가 됐다.

     

가끔은 눈을 감고 게슴츠레 떠보기도 했다.

어느 정도면 앞에 지나가는

나를 못 알아보는 걸까?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

아버지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게 달라 보였던 건 왜일까?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방황의 세월을 보내셨다.

매일 빠짐없이 술로 하루를 사셨다.

이혼을 한 것만으로

나는 인생을 실패했다고 생각하셨다.      


삶의 의미를 놓아버린 것처럼

매일이 술에 취해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엄마의 부재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운영하던 식당도 사업부도로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넘어갔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으셨고

가난도 시작되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깊은 밤 울음소리가 들리는 여러 날이 있었다.

어김없이 술에 취해  돌아온 아버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릴 뿐이었다.

 

그날따라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유난히도 슬프게 들렸다.

 나도 코가 시큰거렸다.


괜찮다고 엄마 없이도

잘 살 수 있으니 그만 울라고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용기 내어 방문을 열고

 엎드려 흐느끼는 아버지 등을 토닥였다.


 “아빠 울지 마세요.

 우리 잘 살 수 있어요.

괜찮으니까 울지 마세요”


아버지는 그런 나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우셨다.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가 집을 떠나고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


서로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끌어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곁에 계실 때 안부전화 한 통

못 해 드린 게 후회로 남는다.


이제는 안아볼 수도 말할 수도 없지만

글로 적어 아버지를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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