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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렁뚱땅 도덕쌤 Jul 30. 2024

첫 학기와 첫 방학

  매 주 글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하며 시작한 학기였는데, 웬걸. 매 주는 커녕 매 달 썼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학기가 되어버렸다. 글로 옮길 만한 사건이 없어서도 아니다.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도 아니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체력이 없었다.


  담임으로서 맞는 첫 번째 스승의 날에는 병가를 냈다.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직 생활에서 처음 써보는 병가였는데 그게 하필 스승의 날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는 걸 아이들에게 문자를 받고서야 알았다. 우리 반 반장은 교문 앞에서 나를 만나지 못했고, 아이들이 꾸민 칠판은 사진으로만 받았다. 첫 스승의 날을 이렇게 허망하게 흘려보내다니. 이것도 다 바닥난 체력 탓이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고열과 몸살. 참 한심한 병이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한 주를 누워만 있었다.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또 자고, 씻지도 않고 잠만 잤다. 그렇게 잤더니 어제 처음으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책이라도 읽을까, 아니 그럴 기력이 없는데, 그럼 영화라도 볼까, 하고 태블릿으로 영화 3개를 연달아 봤다. 2015년에 나온 신데렐라, 2019년에 나온 알라딘, 1992년에 나온 알라딘. 모두 이전에 본 적은 없지만 줄거리는 대충 아는 작품으로 골랐다. 결말을 모르는 작품을 마음 졸여가며 볼 자신이 없어서. 그 정도의 체력도 없어서.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노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학기 내내 의미 있는 주말을 보내지 못하고 시체처럼 잠만 잤던 것도, 일주일 째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 것도, 다 체력 탓이구나. 지금까지 나는 내가 글을 읽거나 쓰면서 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의 힘이 있어야 가능한 거였어. 모든 힘이 바닥나면 누워있는 것밖에 할 수가 없구나.


  7월에 부장님께 이런 얘기를 했다. 아이들이 똑같이 사소한 잘못을 해도, 3월에는 화나지 않았는데 요즘은 화가 나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참고는 있는데, 너무 짜증이 나요. 어떡하죠? 부장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래서 방학이 필요한 거야.


  결심해본다. 이번 방학에는 의미나 가치는 제쳐놓고 그냥 쉬어야겠다. 일단 지금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 신호다. 어쨌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은 회복했다는 거니까. 충분히 휴식해서, 정말 마음에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오면 그때 읽어야겠다.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8월에 개학했을 때는 다시 3월처럼,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을 수 있도록.


  그래서 방학이 필요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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