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명해도 이해되지 않는가
어른이 되고 나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무슨 일 하세요?”다. 질문은 가볍고, 대답도 늘 비슷하다. “저는 은행 다녀요.” “저는 회계사예요.” “투자 쪽 일을 합니다.” 말은 자연스럽게 오가지만, 대화는 이상한 지점에서 멈춘다. 곧이어 따라붙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 하세요?” 이미 답을 했는데 다시 설명을 요구받는 상황. 이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말을 고른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보내는 하루를 통째로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일부만 떼어내자니 중요한 맥락이 빠질 것 같다. 왠지 정확하게 전달이 안된 것만 같다. 결국 직함이나 회사 이름, 가장 무난한 업무 하나를 꺼내 놓고 대화를 마무리한다. 말은 끝났지만, 설명은 여전히 미완인 상태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직업은 애초에 ‘무엇을 한다’라는 문장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직업은 업무 목록이 아니라 하루의 리듬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직업을 기능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회계사는 숫자를 보고, 은행원은 대출을 심사하고, 디자이너는 이미지를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면, 그 기능은 직업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직업의 중심에는 훨씬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다. 하루를 시작할 때의 긴장감, 실수를 감지하는 기준, 책임을 느끼는 지점,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다.
이런 것들은 매뉴얼로 정리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말이 길어지고, 오히려 본질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직업을 설명하려는 순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생략하게 된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겉모습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직업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쉽게 놀란다. 같은 사회 안에서 이렇게 다른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수의사로 일하는 형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의사’라는 직업의 이미지는 비교적 단순했다. PAY닥터조차도 일반적인 직장인보다 훨씬 높은 수입을 얻는 구조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수의사의 세계는 전혀 달랐다. 대형 동물병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구조에서 수많은 소규모 병원이 경쟁하고 있고, 일정 경력이 쌓이면 개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 결과 저년차 PAY수의사의 급여는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까지 내려간다. 왜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지 묻자, 그는 경험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동물을 다루는 일은 매뉴얼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병원 운영 역시 하나의 소기업 경영이기 때문에 진료 실력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몇 년의 경험을 쌓고 나면 인근에 또 다른 병원이 생기고, 그 순간부터는 다시 경쟁자가 된다. 그래서 PAY수의사들은 낮은 급여를 감수하며 경험을 축적하고, 훗날 자신이 개원했을 때 같은 구조를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같은 ‘의사’라는 말 안에 이렇게 다른 현실이 들어 있다면, 우리가 직업을 단어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거쳐 상경계열을 전공한 경우, 교육 과정에서 요구되는 비용은 비교적 제한적이다. 사회에 나와서 받는 급여도 얼추 평균적인 수준에 수렴한다.
하지만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학업과 동시에 실기를 준비해야 했고, 레슨 비용과 작업 재료에 상당한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다. 예술성과 실무를 동시에 요구받는 구조에서 치열하게 버텼지만, 사회의 평가는 생각보다 박했다.
어쩌면 내가 디자인과 미술을 뭉뚱그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훨씬 더 많은 갈래와 언어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하며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공이 같다고 해서, 혹은 비슷한 교육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삶의 구조가 같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업계가 같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자동차 부품 구매팀, 호텔 기획실, 전자회사 지역 영업, 백화점 인사팀, 은행 창구, 증권사 채권영업, 회계법인 세무본부, 통신사 투자심사팀까지 역할은 끝없이 갈라진다. 대학에서 유사한 전공을 공부했던 사람들마저도 실제로는 전혀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너희는 그런 일도 하는구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전공은 같았지만, 직업의 언어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분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문장을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특정 회사로 대분류를 설정하더라도 설명은 끝나지 않는다
특정 업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복잡함은 더 커진다. 공인회계사로 대형 회계법인에 입사하면 감사, 재무자문, 세무로 나뉘고, 그 안에서도 산업별로 다시 쪼개진다. 재무자문 역시 실사, M&A, 구조조정 등으로 갈린다. 증권사도 기업금융, 자산운용, 트레이딩, 리서치, 연금 등으로 나뉘며, 각 조직은 서로 다른 언어와 판단 기준을 가진다.
더 문제는 같은 역할이라도 회사가 달라지면 업무 방식이 또 달라진다는 점이다. 결국 ‘어디 회사에 다닌다’는 말로는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회사라는 단위로 직업을 구분하는 방식 자체가 점점 의미를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모임에서 “저는 수의사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살아가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동종업계 모임에서 “저는 XX자산운용 PE부서에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뭐 하세요?”
타인의 직업을 이해한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보다도 얕게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수박이 담긴 박스를 핥거나, 그 박스를 싣고 가는 트럭 운전사와 인사하는 정도가 더 정확한 비유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나와 다른지를 알게 될 때마다, 세상은 넓고 나는 좁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튜브에서는 직업을 다루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런 콘텐츠조차 현직자의 삶 전체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직업의 핵심은 설명이 아니라 체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일단 우리는 서로 얽혀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타업종과의 협업이 이루어질 때 더 높은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고 같은 직업 안에서도 서로 다른 언어와 리듬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 글은 직업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왜 같은 말을 하면서도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지, 그리고 왜 그 차이를 전제로 소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차이가 어떻게 더 뾰족해지고, 전문성이 강화될수록 왜 소통이 더 어려워지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섞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