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 사진보다 오래 남은 것들에 대하여
번호판을 수집하며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걸 모아서 뭐 하게?”
그 물음은 늘 유쾌한 조롱과 함께 따라왔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물음이 나를 정조준하는 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는 꽤 집요한 편이었다. 찍겠다고 마음먹은 번호는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때로는 유턴도, 추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찍은 번호판’들이 분명 존재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1121이었다. 그날도 고속도로였다.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고, 멀리서 번호판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 1121? 어… 1111은 아니지만 뭔가 정렬감이 좋아.’
정확히 말하면, 이건 수집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도 아슬아슬하게 1111을 비껴가 있었기에 오히려 의미가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진은 찍지 않았다. 그때는 ‘진짜’만 모으겠다는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앨범을 보며 생각했다.
‘그 사진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비슷한 느낌으로 기억나는 번호들이 있다.
0060, 8828.
이건 뭐랄까. 완벽한 숫자 조합은 아닌데, 묘하게 끌리는 느낌이 났다. 8828과 0060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던 날, 나는 둘을 하나로 합치면 8888이 된다는 걸 깨닫고 혼자 피식 웃었다.
‘이렇게 딱 맞게 주차되어 있다니…’
그건 하나의 숫자에 집착하다가 생긴 ‘착시 현상’ 같은 거였다. 그때도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상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진이야말로 진짜 ‘내가 본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놓친 진짜 숫자도 있었다.
5555.
한 번은 아주 또렷하게 봤지만, 운전 중이라 핸드폰을 꺼낼 수 없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 차는 고속도로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자책했다.
“아, 왜 그때 카메라 앱을 켜지 않았지?”
하지만 그건 너무 무리였다. 고속주행 중, 옆 차선 차량을 찍기엔 위험했고 무엇보다 그건 내가 보존하고 싶은 태도는 아니었다.그 이후 나는 마음속에 하나의 기준을 만들었다.
“찍지 못한 순간까지도 수집의 일부로 남긴다.”
또 한 번은 정체된 도로에서, 확실히 로얄넘버였던 차량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있었고, 내가 그 옆 차선에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망설였다. 그리고 결국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민망한 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찍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이건 수집의 윤리에 관한 내 나름의 기준이기도 했다. 무례하게 찍는 것보다, 놓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쉬웠다. 그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 차량의 색, 형태, 번호, 심지어 조수석의 빈 자리까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쫓은 건 숫자가 아니라 확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쫓는 나’에 대한 확신.
길 위의 숫자들은 그 여정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준 도구였을 뿐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물을때 아직 정확하게 답변하지 못했었다.
“그걸 모아서 뭐 하려고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저만의 세계를 하나 만든 거예요.”
그리고 그 세계는 ‘수집 끝났다’는 선언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수집은 끝났지만, 이 숫자들을 어떤 순서로 만났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 그때 옆에 누가 있었는지를 되새기고,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동안은
이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아직 못 만난 누군가에게, ‘이런 세계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 숫자들을 따라갔던 날들 속에는 숫자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