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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가 낳은 괴물

알고리즘을 통과한 나만의 서사

by 비읍비읍

시작된 계산: 3천을 향한 이적 선언


나는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면서 언젠가 이루게 될 "조회수 3천"을 1차 목표로 삼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브런치스토리로 이적(?) 하기 전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간헐적으로 써왔는데, 약 8년 넘게 조밀조밀하게 쌓아온 글들의 총 조회수가 2500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정말 개인적인 일기장처럼 써오던 블로그였는데, 아내와의 유럽여행기를 진득하게 써본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글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읽히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구나 싶었다. 특히 특정 글 몇 개가 어떤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수가 폭증했던 것이다. 단일 게시물의 조회수가 무려 50회나 발생한 것이다.


이왕 글을 쓴다면 이제는 좀 더 '보이는 곳'에서 써보고 싶었다. 브런치스토리는 나에게 그런 공간이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 등록 신청하고 하루 만에 승인 난 것을 보니 자격요건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잡은 목표로는, 글 100개를 쓰고 나서 나도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브런치스토리 링크를 올리는 것이었다. 누가 보든 말든, 그건 내가 혼자 정한 내면의 각서였다.


브런치스토리에 와서도 처음에는 그저 스쳐가는 독자들의 '좋아요' 하나가 전부였다. 이후에는 내 글에 꾸준히 좋아요를 눌러주는 약 8명의 감사한 독자들이 생겼다. 대체 누구신가- 하고 각각의 프로필에 들어가 보니 브런치스토리 상위랭킹에 있는 작가들이었고, 약간 상부상조하자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뉴비가 의지를 잃지 말고 화이팅 하라는 응원의 '좋아요'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독자들이 '좋아요'를 눌러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악수를 나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나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하나의 게시물이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수가 폭등한 케이스가 발생한 것이다.


유럽여행기 중 '사장님, 피렌체에서 잘나가는거 하나 주세요' 라는 글이 메인에 노출되었는지 조회수가 수백 단위로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새 글을 쓰지 않아도 매일 같이 브런치스토리에 접속해서 통계를 보며 뿌듯해했다. 다음 글도 이처럼 잘 되길(?) 바라며 제목을 고민했고, 어떤 포맷이 조회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지 연구했다.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했던가, 다음 글부터는 다시 초라한 조회수로 되돌아왔다.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서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뜬금없이 '서브스턴스 - 후기' 글이 꾸준히 조회수를 기록하더니, 내가 지금까지 올린 글 중 상위 두 번째 조회수를 기록하는 글로 등극하게 되었다. 독자라는 사람들은 여행기보다는 핫한 영화의 후기를 더 원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지지부진한 책보다는 영화를 더 자주 관람하고 이에 대한 코멘트를 글로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숏폼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는 2시간 남짓의 영화를 진득하게 보는 것을 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영화를 15분 정도의 길이로 요약한 유튜브 영상을 보니, 내가 이보다 가독성 있으면서 심층적인 내용을 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좌절감을 느꼈다. 심지어 내 분석은 한낱 수박 겉핥기처럼 느껴져 참담했다. 그리고 유투버들의 영화 해석 영상이나 인스타스토리에 카드 섹션에서는 내가 오히려 그것을 보고 글을 써야 '적당한' 수준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초격차를 느끼기도 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인가- 하며 좌절을 느끼는 와중에도 글을 계속 썼다. 책 후기를 꾸준히 올리는 와중에 두 개의 글이 또다시 반응을 얻었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 - 후기''사모펀드와 M&A트렌드 2025 - 후기' 였다.


조회수가 많이 나온 것에 대해 분석을 해보았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애초에 협성독서왕 이라는 공모전에 내려고 준비했던 책 독후감이었기에 남들도 관심 있어할 키워드였다. 심지어 소설이 영화화 확정이 되어 최근 개봉까지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후감이라는 형식으로 책을 깊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독자층이 있던 것이고,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니 소설은 어떤 책일까-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찾아보았다고 추정이 된다.


'사모펀드와 M&A트렌드 2025'는 2025년 초에 발간된 책으로 자산증식을 위한 개인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핫한 섹터를 궁금해하는 기관투자자 심사역들이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연초라는 시기적 특수성으로 2025년 트렌드가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는 결과였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이렇다 보니 어느새 나는 조회수가 낳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조회수가 잘 나올 수 있는 글은 무엇이고, 주제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이며, 제목은 어떻게 설정해야 노출이 잘되는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통계를 보는 내 모습이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의 가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는 것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세상의 다양한 컨텐츠들을 나만의 것으로 소화해서 나만의 뷰를 남겨놓는다는 초심은 흐려졌다. 그저 '무엇이 사람을 끌까'에만 집중하며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최근 핫이슈에 편승할까 고민도 했다. 유튜브 콘텐츠와 기사들을 짜깁기해 '나만의 의견'인것처럼 포장할까 고민이 들었다. 실제로 백종원 사태를 다룬 글은 내 생각이 맞았기에 쓴 것이지만, 다음 글부터는 그런 마음이 자주 고개를 들었다. 정치 이슈를 리뷰 형식으로 정리해 볼까? 12.3 계엄 사태와 6.3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슈들을 하나씩 리뷰의 형태로 올린다면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콘텐츠도 넘쳐나지 않는가?


이런 내 모습이 어느새 연예 섹션이나 낚시용 기사 제목을 적어내는 정치부 기자들의 행태를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트렌드를 쫓기에는 내가 글쓰기를 본업으로 하고 있지 않으니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목표했던 100개의 게시물을 쓰는 데까지는 앞으로도 6개월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괜히 나를 초조하게 재촉할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괴물 길들이기: 나만의 구조로 다시 쓰기


그러던 어느 날, 기획 블로그처럼 작성해 둔 번호판 수집 프로젝트(1111~9999)를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탐사기획'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내용은 단순한 수집기로써 분량도 여러 게시물로 나눠서 할 만큼은 아니었었다. 하지만 이걸 잘 활용하면 재미있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서사를 만들고, 잡생각들을 구조화하면, 단순한 수집기가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트렌드를 쫒기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내 방식대로' 밀도 있게 작성해 보는 것이야말로 내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브런치북'이라는 형식을 활용해 글을 재정비했다. 투잡을 하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구조를 새롭게 짜고, 분량을 늘려 게시물을 여러 개로 나누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라면 매주 1개씩 올라가게 설정을 하려고 했었는데, 어떻게 설정하는지를 잘 몰라서 10개의 게시물을 한 번에 올렸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매주 1개씩은 꾸준히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특집물인 만큼 매주 1개씩 올라가게 해서 10주, 즉 2달 정도는 시간을 벌어놓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 동안 다른 글들도 높은 퀄리티의 글로 작성해서 올리길 원했던 것이다.


시간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쓸 게시물의 퀄리티는 선수금을 받은 사람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충 쓸 순 없지.


그렇게 나 자신을 재촉하며 주말마다 스터디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내고 게시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중에 본업을 하면서도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흔히 접하는 것들을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것도 글이 될까?' 하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앞서 올린 글들보다 더 높은 퀄리티로 글을 쓰게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고찰에 대한 내용 2개와 책 4권을 읽고 후기를 쓴 게시물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을까'

'회귀물 설정에 대한 고찰'


'케이스 인 포인트 - 후기'

'부의 속성 - 후기'

'청춘의 독서 - 후기'

'대온실 수리 보고서 -후기'


게시물 하나하나가 대충 쓰고 올리는 게 아니게 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채근질하거나 압박하지 않았는데도 깊은 고찰을 하도록 나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다. 표현 하나도 신중해지고, 구조도 많이 고민한다. 이렇게 조회수 확인 중독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만족을 깊게 채워나가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다시 조회수를 확인하기 위해 통계에 들어가 보았다. 누적된 글들이 돌아가며 예기치 않게 조회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때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격언이 떠오르는 말이었다.


성공을 쫒지마라. 성공이 나를 따라오게 만들라.


이 말을 이루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조회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작업에 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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