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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 후기

영화관의 미래, 이제는 뉴-노멀

by 비읍비읍

몇일전부터 부서내 한 후배가 F1 영화를 보고 와서는 난리였다. 휴대폰 배경화면도 이미 바꿨고 본인 BGM으로 F1 OST를 골랐다는 것이었다. 문득 나는 어벤져스가 한창 인기일때 아재들이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으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도배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관의 미래라고 불리는 4DX, IMAX는 경험할 수 있을때 경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시도하지 않고 훈수만 두는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당장 아내와 함께 가기위해 일정을 잡았다. 개인적으로도 궁금했지만, 아내에게 새로운 세상을 소개해주고 함께 경험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4DX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야 했다. 용산아이파크몰은 자리가 도저히 나지 않으니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왕십리CGV인데 이마저도 좋은 자리는 평일 오후 2시 5분에 딱 2자리뿐이 남지 않았었다. 평일 오후 땡땡이는 나에게 쉽게-할 수 있는 일. 바로 예매했다.


너------------무 재밌게 보았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크레딧이 올라가는 때에 회사 후배에게 카톡을 했다.

"좋은 영화 소개시켜줘서 고맙다"


아내도 나만큼 즐거웠을지 궁금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간간히 고개를 돌려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완전 넋빠진 사람처럼 영화에 몰입하고 있었고, 사랑의하츄핑을 보는 7살 아이들이 이런 몰입감이 아니었을까- 싶을정도의 모습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물어보니, 완전히 푹 빠진 모양이다. 대성공-이다.


외국어적인 표현이지만, "~ 하지 않을 수 없었다(couldn't help -)"를 이번에 써야겠다.

영화 후기를 쓰지 않을수가 없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F1』은 한때 꽤 유망했지만 사고로 은퇴한 레이서(브래드 피트)가, 성적 부진에 빠진 팀의 요청으로 다시 트랙에 복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는 경험이 적은 신예 드라이버 JP와 함께, 기존 강팀과의 경쟁 속에서 팀을 재건하려 한다. 단 한 번의 우승, 단 한 시즌의 복귀만을 약속하고 나타난 그는, 레이스보다 더 큰 것을 남기게 된다.



1. 나는 것 같은 기분, shout out to 4DX


4DX를 보면서 "내가 레이싱을 하고 있다"는 착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 저들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시속 300km의 차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각이란 어떤 것인지, 그 감각에 근접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트는 미세하게 떨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통째로 튕겨 올라갔다가 쿵 떨어지는 리듬, 커브를 도는 순간의 기울기, 뒤에서 추돌당했을 때의 진동감까지 느껴졌다.


아, 이것은 체험이었다. fullly한 체험.


특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경기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1차 절정으로 치달을때 였다. 레이싱 팀원인 JP가 경험이 많지 않다는 컨셉이었다 보니 비오는 날은 1등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언제 추월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됬다. F1 경기가 워낙 여러 LAP을 소화해야하다보니 비오는날 운전하는게 얼마나 힘들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런데 4DX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다. 화면 속 레이싱카 위로 비가 떨어질 때, 내 얼굴에도 물방울이 흩어졌다. 와-. 미쳤다.


그 순간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은 관객이 아니라 참가자였다.

그 악천후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감각.


그리고 브래드 피트가 파이널 라운드를 앞두고 말했던 그 대사가 있었다.
"레이싱 하다보면 이런 순간이 온다. 모든게 보이고, 아무도 나를 못 건드려.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그땐 우승이야"


간지나지만 몽상가 같은 말을 했는데, 영화의 막바지에는 그가 말했던 그 순간이 왔다. 이때! 그렇게나 들썩이던 4DX 의자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이 말이다.


좌석은 이제 더 이상 ‘움직임’을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집중력, 몰입, 이상한 침묵, 무의식의 속도 같은 걸 전달했다. 누군가가 말했지. 중요한 순간은 늘 조용하다고. 그 파이널 랩의 정적 속에서, 관객 모두는 그와 함께 날았다. ‘챔피언 멘털리티’라는 게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었다.



2. 전형적이라서 더 확실한 서사, 선배와 후배의 조합


다 보고 나면 누구나 말할 것이다.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stereo type)이었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그런 생각이 안 난다. 그게 바로 전형의 힘이라는 전형이다. 누가, 어떻게, 얼마나 정확하게 해내느냐에 따라 전형은 클리셰가 아닌 정석이 된다.


『F1』의 브래드 피트는 모든 걸 알고 있는 선배다. 하지만 가르치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않는다. 대신, 먼저 달린다. 그의 방식은 고함이 아니라 선행(先行)이다. 야생마처럼 도로를 갈라 달리며 말이 아니라 속도로 후배에게 전한다.


"이 길을 이렇게도 갈 수 있어."


그 뒤를 따르는 JP.
모난 부분이 많고 아직 미완성이다. 그런데 확실히 재능이 있다고 표현된다. 속도감, 본능, 야성, 태도가 조금만 다듬으면 반짝이는 진주가 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겐 JP일 테고, 누군가에겐 브래드 피트일 것이다.
그러면, 선배가 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길을 내보이고, 그가 그랬듯 함께 달리는 방식으로 후배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멋진 선배로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 같으니, 영화를 통해 브래드 피트의 간지를 통째로 뺏어가야겠다.


대놓고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옆에 있어주는 것
그가 깨우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3. 브래드 피트는 대체 언제까지?


처음에 영화관 외벽에 내걸린 광고 플랜카드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아직도 브래드 피트 영화네. (뒷 방 늙은이로 나오려나?)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그는 80세가 아니라 100세까지도 섹시 핫 가이로 활동해야만 하겠다. 브래드 피트를 보면, 시간이 믿기지 않는다.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분명히 중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소년의 리듬과 거리감, 방랑자 특유의 눈빛, 어딘가 고독한 위트가 있다. 내가 나이 먹으면서 나아가야 할 '추구미'가 저기에 있구나 싶었다.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남성의 전형이 있다.


자유롭고 반항적이지만 실력 있는 남자.
집단보다는 혼자, 규칙보다는 직감.

브래드 피트는 그 이미지의 결정체다.
『트로이』에서 반쯤 웃는 얼굴로 전장을 헤집고 다니던 그,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장난처럼 총을 쏘던 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기괴한 전쟁 속에서도 위트 넘치게 유영하던 그다.

그리고 이제 『F1』에서도 여전히 브래드 피트는 나이 들어도 야생마처럼 여전히 자유롭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관객들 모두는 브래드 피트가 나오자마자 알아차렸는데, 영화 속 등장인물은 아직 그를 모른다.

"아직도 자기가 카우보이라고 생각해?"


대사는 그냥 대사가 아니다.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 자체를 겨냥한 질문처럼 느껴졋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아직도 이런 사람을 멋있다고 느끼는 그 심리를 겨냥한 질문이다.
‘늑대는 무리를 이룬다’는 말이 맞는 시대에, 그는 여전히 혼자 달리는 늑대(lone wolf)로 존재한다.


나는 그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인생인 팀워크이니깐.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을 부러워한다. 어쩌면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4. 와일드한 카우보이의 삶, 언제 떠나는게 멋쟁이일까


그는 영화에서 이런 캐릭터다. 한번 우승하면 마치 지겨워서 못견디는 사람처럼 그 곳을 떠난다. F1에 합류하기 이전에 뛰었던 레이싱에서도 우승청부사로 활동하고 제 갈길을 가버린다. 그렇게 가는 그의 차문을 열고 한 등장인물이 이렇게 말한다. "우승 한번하고 떠나는게 어딨어. 매번 돌아다니기만 할꺼냐고"


이렇게 그는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사라지는 스타일인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브래드 피트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습이겠지 싶다. 마치 영화 범죄도시의 마동석 배우처럼 말이다.


근데 그가 멋있어서 그렇지, 그의 행동이 정말 멋있는 행동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브래드 피트는 우승을 원한다. 근데 영화 속 팀은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원한다. 지속성, 팀워크, 경쟁력, 미래- 이런 것들을 말이다. 어찌보면 우승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경쟁력있는 조직으로 만들어두고 그 울타리를 지켜나간다는 것이 말이다.


그것은 우승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프로 운동선수들 중에서 슈퍼팀을 결성하며 팀을 옮기는 사람보다 원 클럽맨- 또는 힘들때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높게 칭송하지 않던가. 그들 중 한명이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다.

"The king stayed the king. The king didn’t run and go chase people"


빛나지 않는 시간에도 버티는 것.

이쯤에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밀워키 벅스의 선수 야니스 안테토쿤보의 인터뷰다.


2023년 플레이오프 탈락 후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실패했나요?"
야니스는 대답한다.
"조던도 커리어의 15년 중 9년은 우승하지 못했어요. 다 실패한 건가요?"
그는 말한다.
"그건 ‘과정’이에요. 우리는 매년 성장하죠. 실패가 아니라 발전이에요."


그건 돈으로도, 트로피로도 대체되지 않는 말이다.
그건 충성도도 아니고 고집도 아니다.
남는 사람의 품격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우승이란 건, 트로피만 말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반짝이는 폭죽처럼 사는 것만큼이나 묵묵히 재사용 가능 로켓을 쏘아올리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진짜 우승은, 불 꺼진 밤에도 엔진을 점검하는 마음,
조명이 없을 때도 계속 달리는 자세,
그리고 빛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떠나지 않는 태도 아닐까?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브래드 피트를 원한다


『F1』은 단순한 레이싱 영화가 아니다.
그건 나이와 속도, 고독과 동료애, 우승과 헌신, 그리고 달리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브래드 피트라는 살아 있는 메타포가 있다. 그가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가 왜 달리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을 여전히 동경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렇게 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패션은 모르지만, 브래드피트가 입은 옷은 내가 사서 입어봐야 겠다.

그런 쿨가이 복장에 쿨가이 몸매로 쿨가이 자세로 벽에 기대어서 살아가고 싶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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