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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l 15. 2024

맨땅에 헤딩

행정고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

‘고시 낭인’


행정고시, 외무고시, 지금은 폐지된 사법시험을 장기간 준비하는 수험생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 중에는 무려 10년 이상을 공부하고도 붙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기업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를 하느라 눈이 높아진 수험생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긴 공백기도 설명되지 않는다.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 멋진 말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가 감히 진짜로 이 시험을 쳐도 될 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행정고시의 공포


우선 내 전공에 맞는 직렬이 없었다. 그나마 가깝다고 생각되는 직렬(일반기계직)은 1년에 단 8~12명만 뽑을 정도로 소수직이었다. 이렇게 적게 뽑다 보니, 학원도 없었다. 수요와 공급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는 선배도 없고, 자료도 없고 인터넷 조금 긁적인 게 전부였다. 심지어 기출문제 모범답안도 없어서 직접 찾아야 했다!


게다가 합격자들의 대학을 찾아보니, 절대다수가 일명 ‘SKY’, ‘서포카’ 출신이다. 반면 우리 학교에서는 5년에 1명 정도 합격자가 나오는 상황(‘12년 1명, ‘17년 1명)이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 학교 안에서도 공부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목숨 걸고 달려드는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엘리트 학생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


또한 내가 치려는 시험은 전공적합도가 매우 높은 시험이었다. 내가 치려는 직렬은 총 4과목을 응시해야 하는데, 이 중 2과목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과목이고, 나머지 2과목도 ‘수박 겉핡기’만 한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나무위키에는 ‘기술직 시험은 전공자가 아니면 붙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고시 낭인’이 되는 것. 고시는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실패할 경우,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 엄청난 노력의 대가는 나이밖에 없고, 뒤늦게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셀프 테스트


하지만 마음을 접을 수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합격자 수기를 찾아 읽고 있었다. 도전하고 합격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해버리면, 훗날 원하지 않는 직장에서 일하며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진입할 수도 없었다. 무언가 증명이 필요했다. 내가 도전해도 된다는 무언가가.


문득, 고3 때가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처절하게 공부하였다. 그 때의 기억. 그 절박함이 있다면, 어쩌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테스트하기로 하였다. 복학 후 학점을 지켜보자. 내가 정말로 자격이 있는지.


그러고 나는 마음에도 없는 학과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걸 못하면 안 된다. 이것도 못 하는데 어떻게 행정고시를 붙겠는가. 수업 때는 맨 앞에 앉았다. 아침저녁으로 3시간 통학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노트를 꺼내었다. 수업 중간중간의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였다. 시험 기간이 아닐 때에도 밤까지 공부하였다. 그 결과, 나는 처음으로 A+ 학점들을 받으며 학점을 4점대로 올릴 수 있었다. 1학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과에서 ‘공부 잘 하는 애’가 된 것이다.


결단의 시간


그럼 이제 정말 해도 될까?


막상 ‘셀프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자, 또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 과에서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진로 얘기는 우리 2, 3학년들의 가장 흔한 대화 주제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뻔했다. ‘사기업(조선소)이냐, 공기업이냐, 아니면 대학원을 갈 거냐’. ‘어떤 선배는 기사(자격증)를 두 개나 땄다더라’. 과에서 ‘행정고시’라는 말은, 내 입에서 나오는 것 외에는 단어 자체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자꾸 흘러 어느덧 3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결정할 시간이었다. 할 거면 이제 시작해야 한다. 아니면, 과감하게 접고, 취업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달이고 고민하였다. ‘행정고시를 하려고 한다’ 주위 친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나에게 되물었다. 진짜로 할 거냐. 안 되면 어떡하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았다. 내가 행정고시를 생각한 이유. 세상에 끼칠 영향력. 그거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해보자. 이 청춘을 걸고, 달려보자.


마침내 결정하였다. 행정고시를 응시하기로. 이제 남은 것은, 우리 학교 고시반에 방문하여 등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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