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는 평균 0.1점 차이가 아주 크다. 소수점 차이로 합격이냐, 불합격이냐의 희비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30점짜리 큰 문제를 맞히냐 틀리냐는 대체 얼마나 차이가 날까?
셋째 날 시험. 운 좋게 그 문제를 푸는 데 성공한 나는, 이제 시험 치는 내내 안 풀리던 문제를 마저 풀기 위해 돌아갔다. 단 한 문제만 남았다. 그 문제만 맞히면, 나는 이번 과목에서 고득점을 노릴 수 있었다.
얼핏 쉬워 보이는 문제였는데, 이상하게 잘 안 풀렸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세네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답을 구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답이 이상했다. 그것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수도 없이 풀어본 경험상, 답은 분명히 +(플러스)여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계산을 다시 해도 답은 -(마이너스)가 나왔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시험이 종료되기 직전이었다. 고민하던 나는 결국 답을 인위적으로 -에서 +로 바꾸었다. 그렇게 타종이 울렸고, 셋째 날 시험은 종료되었다. 이제는 답안지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감독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감독관의 지시대로 책상 밑에 손을 둔 채, 멍하니 문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문제지에 있던 그림은, 여태껏 연습할 때 풀던 그림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아, -가 맞았다.
-가 맞는데 +로 억지로 바꾸었다. 16점짜리 문제인데.. 맞는 답을 억지로 틀린 걸로 고친 것이었다.
가만히 두면 되는 거였는데..
몸과 마음이 꿈틀거렸다.
‘지금이라도 답안지를 바꿀까? 5초면 되는데’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험이 종료된 지금, 답안지를 건들면 그건 곧 부정행위였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윽고 감독관은 답안지를 수거해 갔다. 이제 나는 부정행위조차 할 수 없었다. 감독관은 이제 퇴실해도 좋다고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수험생들..
‘내 멍청한 생각 때문에 3년간 고생한 것이 다 날아갔구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내 잘못이었다. 누구를 탓할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참기 어려웠다.
‘왜 이렇게 평화롭지? 왜 아무도 이런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거지?’
당연한 거다. 다른 사람들이 내 실수를 알 리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였다.
진정하려고 손을 꽉 쥐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리에서 뭔가 번쩍였다.
나는 들고 있던 물건을 책상 위로 강하게 내리꽂았다.
소리와 진동은 고사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감독관과 다른 수험생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시험이 끝났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뒤, 감독관은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 내 주위로 다가왔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가득하였다.
이 날은, 나의 수험기간 중 가장 멘탈이 나간 순간이었다.
나는 자괴감과 자조에 지배되었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안다.
소란을 피운 나에게 화조차 한 번 안 내신 감독관님과 다른 수험생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