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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by 이월생

점심도 먹지 않고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게다가 내일 마지막으로 치는 과목은 내가 가장 걱정하던, 작년에 48점 받은 바로 그 과목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달려야 했다. 끝까지 해야만 했다.


전율


다음날, 시험을 마저 치기 위해 응시장으로 돌아갔다. 주위 다른 응시생들이 나를 피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마지막 과목 응시 시간이 되었다. 문제를 훑어보았는데,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하나 나온 것을 보고 나는 크게 당황하였다. 우선 다른 문제들부터 풀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머지 문제들은 모두 풀 수 있었다. 몇 번씩 검산까지 하고 난 뒤, 나는 남은 그 문제로 돌아갔다.


잘 생각해 보니, 언젠가 문제지를 넘기며 얼핏 본 듯한 개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걸 바탕으로 일단 그래프부터 그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풀 수 없었다. 애당초 ‘모르는 문제’인데 풀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전혀 다른 개념을 담고 있는 문제의 풀이방법을 응용하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방법을 사용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나는 흥분한 상태로 풀이를 써 내려갔다. 그 와중에 또 실수를 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곧 그 실수를 발견해 낼 수 있었고, 최종적인 답을 도출해 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문제를 푸는 데 성공하였다. 시험 종료 6분 전이었다.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100점을 예상했다. ‘아, 이번엔 정말 붙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한양대학교 기념품점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한양대 상징물이 박힌 고리를 구입했다.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길 바래서였다. 한양대 기념품과 시험에 붙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글쎄,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었다. 이렇게 7박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나는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탑승하였다.



늦은 아침, 나는 침대에 누워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꿈의 장면이 바뀌더니, 첫째 날 시험치던 문제가 나왔다. 어, 뭔가 잘못됐다. 나는 바로 꿈에서 깨어났다. 그 문제를 찾아보았다. 아, 실수했다. 시험칠 때는 몰랐는데, 꿈에서 실수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다른 꿈을 꾸다가,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시험, 100점을 받으리라 믿었던 그 과목의 문제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 깜빡했다. 실수했다. 바로 잠에서 깼고, 문제를 복기했다. 명백히 틀렸다. 그거 하나 틀려서, 줄줄이 새끼문제들까지 전부 다 틀렸다. 20점이 날아갔다. 심지어 그 문제는, 막판에 내가 풀던 ‘모르는 문제’도 아니었다. ‘쉽고 아는 문제’였고, 반드시 맞춰야 했던 문제였다.


이틀 연속 꿈에서 실수를 발견했다.


악몽이었다.


오히려 무덤덤했다. 그냥 포기했다. 그렇게 쉬운 문제들을 통째로 날려놓고 붙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수는 ‘최소 3개’였다. 시험장에서 문제지 낸 직후 깨달은 실수가 하나, 꿈에서 발견한 실수가 두 개니까. 아니 심지어, 내가 발견하지 못한 실수가 더 있을 수도 있었다. 대체 몇 개를 틀렸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꿈을 꾸는 게 무서웠다. 틀린 문제가 꿈에서 또 나올까 봐.


정지


왜 문제 풀 때는 모르다가 시험이 끝나자마자 이걸 깨닫는 거지?

왜 현실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꿈에서 이게 튀어나오는 거지?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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