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시험은 어려웠다. 특히 언어 분야 과목이 심각했는데, 어찌나 답이 없었던지, 그 과목을 50점 받을 거라 예상할 정도였다. 다른 과목들도 심각했다. ‘125 x 3’의 계산을 ‘400’으로 처리해서 틀린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좌절할 틈이 없었다. 전업 수험생으로서 시험을 준비하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었기에, 바로 2차 시험 준비에 돌입해야 했다.
(다행히 시험이 어려웠던 탓인지, 작년보다 합격선이 확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1차 시험에 붙을 수 있었다)
늦잠을 자는 습관은 여전했다. 수면 패턴을 바꾸기 위해 수면유도제를 먹기도, 밤샘 공부를 하기도 했다. 행정고시만 준비하기는 불안해서, 7급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특정 한 과목만 공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특히 암기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중요했다. 내가 진짜 암기했는지를 확인하려면 백지에 직접 써봐야 했는데, 그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팔이 아픈 일이었다. 그러다 노트북에 눈이 갔다. 내가 외운 내용을 노트북 빈 화면에 타자로 쳐보고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러자 효율성이 훨씬 좋아졌다. 이 방법을 시험 한 달 전에야 알았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이렇듯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계속 준비를 이어갔다. 수험생의 시계는 빨랐고, 어느새 또다시 2차 시험일이 다가왔다.
부산 - 서울 기차 요금은 비싼 편이다. 특히 KTX 요금은 거의 6만 원에 달한다. 식비를 아끼느라 굳이 4,000원짜리 값싼 학식을 찾아 먹는 수험생에게는 꽤 큰 부담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대신 이동하는데 6시간이 넘게 걸리는 무궁화호를 타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무궁화호에는 카페칸(일종의 자유석 공간)이 있었기에 공부가 가능했다.
상경하는 날에는 첫날 응시하는 암기과목 공부에 올인하였다. 암기하고, 암기했는지 확인하고, 필기한 것을 읽다 보니 6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서울역에 도착 후 승강장 위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코레일 승무원 두 명과 눈을 마주쳤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승무원이 웃으며 물었다. 당황한 나는 얼버무렸다. 그러고 보니, 올라오면서 승차권 검사도 하지 않았었다. 카페칸은 자유석으로 앉기에, 꼭 승차권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이번 일정은 시험 치는 날 4일, 중간에 끼인 휴일 2일이 있었다. 그리고 시험 치기 이틀 전 올라갔기에, 나는 총 8일간 서울에 있는 셈이었다. 잘 포장하면, 일종의 7박 8일짜리 서울 여행으로도 볼 수 있었다.
매년 그랬듯이, 이번에도 짐을 가득 들고 갔다. 양손에 든 두 개의 큰 캐리어는 수험책으로 가득 찼고, 미처 싣지 못한 책은 어깨의 가방에 들어갔다. 심지어 이번에는 노트북까지 들고 갔기에, 가방은 예전보다도 더욱 무거웠다. 나는 평소 5분이면 갈 거리를 20분 만에 겨우 이동하고, 계단 대신 이동할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헤맸다.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공부하다, 시험 응시장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10~12시, 운명의 시험을 치른다. 그러고는 점심을 빠르게 먹고 숙소로 이동하여 밤 12~1시 넘어서까지 공부한다. “하루에 3시간 자고 공부한다”는 흔한 합격수기의 증언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다음날 시험이 너무 걱정되어, 침대에 누운 지 2~3시간 만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 다시 공부를 하였다. 사실 힘들지도 않았다. 눈앞에 있는 괴물을 무찌르는 게 너무 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음날이 휴일인 날이었다. 낮에 잠시만 쉬자 하면서 침대에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무려 8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동안 못 잔 잠이 한 번에 쏟아진 거였다.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래도 피로는 풀렸다. 또 이렇게 잠드는 건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을 하자, 나름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첫째 날 시험, 둘째 날 시험 모두 내가 준비한 내용 위주로 출제되었다. 중간중간에 실수한 것들도 대부분 바로 발견해서 고칠 수 있었다. 혹시 못 봤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며, 가슴이 철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셋째 날 시험은 ‘재료역학’이라는 과목을 응시했다. 가장 자신 있으면서도, 어렵게 나온다면 얼마든지 어려울 수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던 과목이었다. 시험지를 보자마자 훑어보았다. 세상에, 시험 치기 한두 달 전에 처음 봤던 개념이 있었는데, 그게 딱 나와 있었다! 만약 그때 그 책을 안 봤더라면,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대박이었다.
셋째 날 시험시간 내내,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