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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카 Braka Feb 20. 2021

가장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면

나의 학교, 대안학교에 대하여(6)

시끄러운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새벽 5시 45분.'


밤새 이불속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잠옷 대신 차갑게 식은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운동복에서 전해지는 한기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린다.


혹여나 내 소리에 룸메이트가 깰까, 조심스럽게 MP3와 신발을 챙겨 방을 나온다.


아, 이어폰을 까먹었다.

문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들어가 눈치를 살피며 이어폰을 챙겨 나온다.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신발끈을 질끈 묶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기숙사 지하로 걸어내려간다.


해도 덜 뜬 새벽부터 나는 혼자 무얼 했나?

바로, 달리기였다.




내가 처음 달리기 시작한 것은 모두 '국토'를 걷기 위함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매년 주최하는 주 행사 중 하나로, 특정 지역을 4일 정도 계속 걷는 '국토 사랑 행진'을 줄여서 국토라고 불렀다. 중국에 간 고1과, 입시 준비하는 고3을 제외한 중등과정부터 고등과정에 있는 학생 모두가 이 행사에 매년 참여해야 한다. 나는 고등 신입으로 들어왔기에 그 해의 국토는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국토였다.


국토를 떠나기 몇 달 전부터 내 마음은 근심 걱정으로 가득했다. 고2라면 국토 조 조장을 해야 하는 학년이었다. 그러나 나는 국토가 처음이었고, 아래 학년 애들을 돌보기 전에 내가 힘들어서 먼저 포기해 버릴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고민만 하던 와중에 국토 조 편성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대로 고민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력을 보니 그날부터 국토까지 남은 시간은 단 2주, 나는 일단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2주 동안 아침 일찍이던, 수업이 끝난 후던, 꼭 20분씩 걸었다.

처음에는 20분을 쉬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그러나 꾸준히 며칠을 걸으니 1주일 후부터는 뛰는 것이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책임감으로 시작한 걷기였지만, 어느 센가부터 내가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주 동안 했던 나름의 훈련 덕분에 나는 국토에서 뒤처지지 않고 동생들도 챙기며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토를 준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학기부터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오후에도 뛰어 보았지만, 수업으로 이미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헬스장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비교적 힘이 나는 아침을 내 공식 달리기 시간으로 택했다.


처음에는 기숙사 지하 헬스장에 있는 러닝머신에서 20분을 뛰었다. 날씨가 풀리고 난 후부터는 밖으로 나가서 뛰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 안에 있는 작은 호를 중심으로 3바퀴씩 달렸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은 자주 이렇게 물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안 피곤 해?"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했다. 그냥 피곤한 게 아니라 엄청.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냥 다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무엇보다 따뜻한 이불에서 빠져나와 땅에 발을 딛는데 까지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먼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시간에 운동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운동을 마치고 물을 마시며 아침 기상 방송을 들을 때면 그렇게나 뿌듯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신나는 노래 박자에 맞춰 뛰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운동 이상의 스트레스 해소 시간이었다. 친구관계나, 공부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기억하면서 쿵쾅쿵쾅 뛰다 보면 어느 센가 스트레스는 저 멀리 사라졌다.


어떤 때는 노래를 듣지 않고 온전히 자연의 소리와 내 숨소리에 집중하여 달렸다. 특히 밖에서 뛸 때는 가급적으로 노래를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새벽에만 들을 수 있는 특유의 새소리와 바람소리, 풀소리를 들으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복잡하게 꼬여있던 생각들이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또한 새벽의 축축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나면 하루를 더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업다운이 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최근 들어 깨달았다. 금방까지 행복하고 들뜨다가도 사소한 일에 쉽게 지치고 우울해한다. 이런 내가 한창 예민한 고등학생 시절에 기분을 조절하면서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아침 조깅 덕분이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몸의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나는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않고도 무작정 즐겁게 달렸던 과거의 나를 마구 칭찬해 주고 싶다.


그런 날이 있다. 다른 날과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날, 근데 나는 너무 답답하고 지쳐서 어딘가로 확 도망가고 싶은 날.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집 주변을 가볍게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달리기를 모두 마치고, 아침 해를 보면서 멍 때릴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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