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의 캠퍼스에서 맞이하는 봄

by 브라카 Braka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불과 며칠 전에 나무에 달린 꽃봉오리를 보며 곧 꽃이 피겠구나 하며 설레었던 것 같은데, 벌써 나무가 하얗고 분홍색 꽃으로 가득 찼다.


오늘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지만, 그 마음먹는 게 어려워서 한 달에 한번 꼴로 겨우 만나게 된다.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이 대학에서 진행하는 영어 캠프를 자주 참여하고, 아는 분들이 많이 계시던 학교라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학교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 기억에 이 대학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은 나보다 훨씬 큰 어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친구들이 이 학교에 진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감회가 남달랐던 것 같다.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에 가니 좀 낯설었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오랜만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나에게 대학 캠퍼스는 내 공부방 안 인데, 둘셋 무리 지어 캠퍼스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이 누리는 캠퍼스가 바로 내가 상상하던 대학 생활이었다. 학교에 한번 발도 디뎌 보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도 나름 온라인 수업으로 보내는 두 번째 학기라고 수업방식에 빨리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시차 걱정할 것 없이 제시간에 수업을 듣고 또래와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며 처음으로 한국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항상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대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굳이 집과 멀고 먼 서산에 있는 곳으로 선택한 것도,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을 비행해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있는 대학을 선택한 것도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항상 모든 상황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작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수였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내 선택이었다. 내가 정말 원했다면 기다려서 비자를 받고 학교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백신이 보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가지 않았다.


봄이 되고 꽃이 피는 것을 보니 혼자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게 더 외로운 것 같이 느껴졌다. 내가 학교에 갔다면 적어도 또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느끼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또 바로 옆에서 대학 생활하는 친구들을 눈으로 보고 나니 나의 이십 대만 그냥 지나가 버리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조금 슬펐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또 그 아쉬움을 채워 줄 수 있는 대안책도 항상 있기 마련이다. 이번 같은 경우에도 미국에 가지 않아서 새로운 만남이 없었던 대신 기존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 내가 잊을만하면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에 찾아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학교에는 고등학교 때 보다 졸업하고 더 친해진 친구도 있다. 졸업 이후에 학교가 가깝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하는 방식이나 고민하는 것들이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다 함께 어울리면서 알지 못했던 그 친구의 더 깊은 면들이 나와 다른 듯 비슷했다. 이제 나도 그 친구에게 거리낌 없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꽃이 예쁘게 핀 학교를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면서 솔직히 부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또 이만하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친구들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 친구들도 없었다면 나는 아마 답답해서 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스트레스로 터지기 직전에 친구들을 찾아가서 식히고, 또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 달려가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이 상황이 지금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것 같다. 이번 봄을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 맞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학교에서 지날 날은 많이 남았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야겠다.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내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쓰기를 멈추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