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사랑해요"
"좋아요!"
내가 참 자주 하는 말들이다. 누구에게?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는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항상 나와 우리 오빠에게 말씀하셨다. '사랑해', '너무 예뻐', '귀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도리어 더 많이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고 따뜻한 말이기에 내가 들은 만큼, 그리고 많이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 꿈이자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나도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나, 나 자신이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나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너 자신 하나조차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내 대답은 '그러게.'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사실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빨리 반응하는지 아는 만큼 내 미운점, 부족한 점은 그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는 내 못난 점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고 평생 그들이 몰랐으면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들은 너무 소중하고 내 못난 모습 때문에 그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내 부족한 점들이 부끄럽고 싫었다. 나의 게으른 모습, 우울한 모습, 살찐 모습, 바보 같은 모습 모두 내가 너무 잘 아는 내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잠깐 긴장을 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이지, 다시 진짜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매번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사춘기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계속했던 것 같다. 특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에는 그런 불안함이 더 커졌다.
바보같이 보이지 않아야지, 예쁘게 보여야지, 바른 사람으로 보여야지 하며 생각했던 것들은 내가 나를 인지하고 아끼게 하기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열등감만 키웠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나는 좋은 사람,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닌데 세상에는 나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 멋진 사람들을 보고 나를 봤을 때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대단한데, 나는 왜 이만큼 겨우 하고 힘들어할까 하며 나를 몰아세우기 바빴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항상 나를 찌르는 말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유튜브든 다음이든 자존감에 대해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자존감 높이는 법, 자존감을 지키는 법, 자존감 테스트 등등 이렇게 정보가 많은 걸 보면 나 말고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존감에 대한 글이나 동영상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에이, 자기 부족한 모습을 뻔히 알면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
나는 영상 속에서 이렇게 하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리어 의심했다. 말만 저렇게 하고 아마 저 사람도 마음속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나를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첫 순간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떻게,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하고 또 나의 망가진 모습들을 보며 스스로 자책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사실 이 말 조차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남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쉬운 사람이었다. 내가 관심 있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좋은 모습은 너무 잘 보였다. 이 사람은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또 어떤 이유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부족한 면을 마주할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장점과 좋은 점들이 있기에 그것까지도 사랑으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넓은 마음을 왜 나에게만 빨리 허락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편입생으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바닥을 찍었던 자존감이 고등학교에 적응할 때 즈음부터 점차 올라갔다. 친구, 수업, 환경 등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면서 정작 나는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아침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작년 대학에 입학하고, 코로나에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하루아침에 180도 바뀌어버린 세상에 또 상태가 다운되기 시작했다.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너는 어떻게 사람이 큰 반응 없이 무던하냐고 하지만 사실 나는 멘탈이 매우 약한 사람이다. 사소한 일에 눈물이 많고 뒤끝도 있다. 이 점 조차 친구들이 알지 않았으면 해서 계속 숨기기 급급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괜찮은 날들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지독한 외로움에 빠지기도 하고,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내 상황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냥 도망치고 싶은 날에는 코로나에 갈 곳도 없으니 정차 없이 동네를 오래도록 걸었다.
방황하는 나 자신을 마주하며 너는 왜 너를 챙기지 않냐고, 소중히 다루지 않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나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고 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생각했다. 아니, 항상 하던 생각이었지만 그날따라 머리에 화살이 날아와 박히듯이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왜 사랑할 수 없지?
그렇게 다시금 내 주변을 돌아봤다. 내 주변에는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한 이메일이 왔다. 저번 학기에 꽤 좋은 성적을 받았기에 아너 소사이어티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메일이었다. 나는 학생으로서 수업에 항상 열심히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이 또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 몸을 봤다. 최근에 부쩍 살이 오르긴 했지만 꾸준히 해온 운동 덕분에 건강했다.
다시 생각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도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그렇게 어쩌면 처음으로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했다.
내 몸을 아끼고 더 건강하게,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 좋은 습관들이기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좋은 습관이라고 해서 막 엄청난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밥 천천히 꼭꼭 씹어먹기, 물 2L 마시기 습관을 들였던 것이 생각나서 이번에 또 새롭게 시작했다. 밥 제시간에 꼭 챙겨 먹기, 먹을 때 맛있게 즐기면서 먹기, 매일 짧게라도 운동하기, 바른 자세로 걷기 등이 이번에 다짐한 습관들이다. 정말 별것 아니지만 의식하면서 살아보니 내가 나를 더 생각하고 나에게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이제는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완전히 이해된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니 내 주변 사람도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었고 사소한 것에도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앞으로 또 새로운 환경에 가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힘들겠지만, 이제는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돌보는 것도 다른 것들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내가 나를 돌보고, 또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내가 받았던 넘치는 사랑을 모두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