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마음 Feb 24. 2024

정월대보름에 복을 쌈 싸다

“부스럼 깨물자”

캄캄한 새벽에 눈 뜨자마자 엄마는 호두를 내밀며 소리 내어 깨물라고 한다.

눈 뜨자마자 왜 깨무는 거예요? 호두 깨물기 전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1년 내내 몸에 부스럼 생기지 않도록 깨물어서 먹으라고” 이렇게 말하시던 엄마의 부엌이 그립습니다. 

    

오늘은 갑진년 정월 대보름입니다.

부럼을 깨는 이유는 정월대보름에 견과류를 깨물어 악귀를 물리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선조들은 부스럼이 악귀가 퍼트리는 병이라고 생각해서 딱딱한 견과류를 깨물어 '딱' 하는 소리로 악귀를 물리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럼은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가 튼튼해지길 바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정월대보름은 밝은 달빛이 악귀, 질병, 불운을 없애는 상징이라고 믿었으며, 부럼을 깨물고 귀밝이술과 각종 나물을 비롯한 오곡밥, 약밥 등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집도 오늘 아침에 아몬드로 부럼깨며 정월대보름 아침을 열었습니다.    

 

오곡밥과 나물은 어제 미리 해서 먹기 시작했고요. 

매년 돌아오는 정월대보름을 소중히 생각하며, 어린 시절부터 늘 챙김을 받고, 이제는 내가 챙기면서 우리의 세시풍속을 이어가는 중이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데 나의 이러한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잘 전달되고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제는 생기기도 한다.


설날 이후로 딸과 손자가 집에서 머물다가 어제 집으로 갔다. 평상시에는 보름전날 저녁에 먹던 것을 점심에 먹으려고 아침부터 서둘러 부엌에서 오전을 보냈다.     

전날 저녁에 찹쌀, 호랑이콩, 붉은강낭콩, 붉은팥, 재팥, 찰수수, 검은콩 등을 미리 불려 두었다. 아침에 콩과 팥은 한번 후루룩 삶아서 물을 버리고 다시 물 부어서 무르도록 삶아두었다. 찰수수도 삶았다.     

큰 양푼에 불린 찹쌀과 잡곡을 혼합하고 소금간이 스미도록 1시간 정도 재워둔다.

그사이 소고기 뭇국을 팔팔 끓여두고 나물을 준비했다.

그동안은 무채와 콩나물을 넣은 국을 끓여 먹었었는데, 올해는 소고기 뭇국으로 끓여보았다. 역시 가족들 반응이 더 좋았어요... 저는 콩나물 뭇국이 더 맛있고 향수가 있는데 말입니다.   

  

나물은 5가지로 준비했다. 알토란이란 프로그램에서 이종임 요리연구가가 알려준 만능나물양념장으로 쉽게 간 맞춤을 했다. 양념장 - 집간장 5T, 다진파 6T, 다진마늘 3T, 깻가루 2T, 들기름 2T , 설탕 1/2T, 표고버섯가루 2T.

표고버섯가루는 제가 애정하는 맛내기용 재료로 많이 이용하는 편이며, 조미료 없이 감칠맛이 난다고 가족 모두 좋아합니다.     

미지근한 물에 다시마 한 조각을 넣어서 다시물을 만들어 둡니다. 재료 준비하면서 우리면 되겠죠!!!     

가족들이 가장 잘 먹는 나물과 언니가 보내준 묵나물로 조물조물 무치고 볶았습니다.

묵나물을 불릴 때는 찬물에서 불려야 쫀득함이 있어서, 충분히 불리고 꼭 짜서 양념장 넣고 조물조물 양념을 스미도록 잠시 재워 두는 게 나만의 방법이다.     


팬에 현미유와 들기름을 3:1 비율로 넣고 양념해 둔 나물을 볶습니다. 중간중간 다시마 우린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면서 부드럽게 볶아 줍니다. 나른하게 볶인 나물을 잠시 뜸을 들이고 참깨로 마무리합니다.      

시금치 무침에만 참기름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들기름으로 맛을 냅니다. 그래야 두고 먹어도 질리지 않게 먹게 되네요. 저는 보름에 만든 호박고지 나물을 가장 좋아합니다. 다른 때 만든 호박고지는 그 맛이 아니더라고요.     

정월대보름에 먹는 묵나물 중에는 어린 시절 홑잎나물을 가장 잘 먹었습니다. 홑잎나물은 화살나무의 어린순을 말하는데, 홑나물이라고 불렀다. 이젠 그리운 나물이예요. 엄마가 안 계시니 먹을 수가 없는 나물이예요. 엄마와 마지막 홑잎나물을 기억해 봅니다.     

어느 해 봄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나물을 뜯어서 주셨어요. 엄마의 체구는 정말 작으신데 나무는 크고 뜯기가 참 힘드셨을 겁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와서 끓는 물에 데쳐 맛있는 나물 만들어 먹을 요량으로 데쳤습니다. 아뿔싸!!! 이게 무슨 일이죠!

홑잎나물에 발 빠른 녀석들이 벌써 다니러 왔네요. 맛있는 걸 벌레들이 먼저 먹고 있었던 겁니다.

엄마는 시력이 나빠지셔서 벌레까지는 보지 못하시고, 당연한 듯이 봄이면 자식들과 먹으려고 뜯어 신 거죠!! 엄마의 건강도 좋은 편은 아니셨거든요.     

이 나물이 엄마가 주신 마지막 홑잎나물이었답니다. 벌레들도 좋아하는 이 나물은 생리불순과 어혈로 인한 복통에 효능이 좋습니다.   

  

이젠 언니가 뽕잎나물을 보내줍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과 추억을 함께 만들어서 먹고 있습니다 뽕나무에서 나온 새순을 따서 바로 데쳐 무쳐 먹어도 맛있고, 깨끗이 씻어서 쌈으로 먹어도 맛있고, 살짝 데쳐서 말린 다음 묵나물로 해 먹어도 여전히 맛있는 나물입니다.     

점심에 같이 먹으려고 아침부터 부엌에서 몇 시간을 서서 오곡밥 쪄내고, 국 끓이고, 나물 만들어서 한 상 차려서 식구들 모두 만족스럽게 잘 먹었습니다.     

모두 배부르게 잘 먹었다고 하니, 만든다고 오전 내내 서 있던 다리에 다시 힘이 솟아나네요.     

저희 집은 어제 점심부터 정월대보름 오곡밥과 대보름 나물을 먹고 있습니다.

김에 밥과 나물을 넣고 복쌈을 만들어서 먹으며 올 한 해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 올 한 해도 건강하시고 복이 그득하시길 바랍니다.

이전 02화 따끈따끈한 손두부는 사랑을 담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