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지금 바로 주소 좀 보내봐. 오랜만에 택배 보낼랬더니 주소가 없네!” 오빠에게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다. 오빠와 나이 차이는 19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설 명절이 돌아오면 엄마는 분주하셨다. 객지에 있는 하나뿐인 아들이 설 쇠러 온다고 조청 만들고, 가래떡을 뽑아서 머리에 이고 마당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떡 방앗간은 집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리고 꼭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두부다.
메주콩을 불려두고, 저녁이 되면 맷돌을 방으로 들인다. 커다란 함지박에 맷돌을 놓고, 불린 콩을 갈기 시작한다. 엄마는 오른손으로 맷돌 어처구니를 잡고 돌리며, 왼손으로는 불린 콩 한 수저씩 떠서 맷돌 구멍으로 넣는다. 갈려진 콩물들이 맷돌의 아래돌과 윗돌 사이로 뽀얗게 흘러내린다. 그 옆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가 일을 마치시길 기다리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추운 겨울날 새벽잠에서 깨어나니, 방 윗목에는 밤새 갈아 놓은 콩물이 함지박 그득 담겨있다. 문 밖 가마솥에는 벌써 물이 슬슬 끓기 시작한다. 아궁이에서 활활 타던 불은 잠시 꺼내어 가마솥의 온도를 낮춰준다. 솥단지에 콩물을 한 바가지씩 살포시 떠 넣고 거품이 생기지 않게 저어가며 콩물을 익힌다. 커다란 함지박에 자루를 넣고 익힌 콩물을 떠 담는다. 자루 입구는 손으로 오므려 꽉 잡고 주걱으로 자루를 꾹꾹 누르며 콩물을 걸러 준다. 자루가 미세할수록 부드러운 콩물이 걸러진다. 걸러진 콩물을 다시 가마솥에 옮겨 담아야 한다. 그 상태의 콩물은 두유인데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지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엄청 고소하고 달콤했을 것 같은 상상이 된다. 그 시절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 떠다가 만든 두유였으니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냥 마셔도 맛있었던 물이다. 오염이라는 단어를 생각도 못하던 시절의 물이니 말이다.
가마솥으로 옮겨 담은 짜낸 콩물에 간수를 뿌려주면 몽글몽글 엉기면서 순두부가 만들어진다. 간수를 친다고 말하는데, 넓은 나무 주걱 위로 간수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휘휘 두른다. 엄마는 간수의 양에 따라 두부의 엉김 정도가 달라진다고 간수질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잠시 두면 순두부가 된다. 순두부는 두부틀에 보자기를 깔고 바가지로 퍼 담는다. 보자기 귀퉁이를 손으로 잡고 흔들며 두부틀 모양에 맞춰서 양쪽으로 맞 덮는다. 그 위에는 넓적한 덮개를 덮고 커다란 돌을 얹어서 수분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추운 겨울이면 동상이 걸려서 손가락이 통통 부어 있었다. 두부를 만드는 날이면 뜨끈한 두부 순물에 손을 담그면서 손을 녹였다. 그때의 뜨거운 순물의 느낌이 지금도 손에 느껴진다. 엄마와 함께 두부 만들던 추억이 뜨겁게 다가와 마음이 따뜻해진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에 얼른 들고 와서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어머나! 두부 한 판이 온 거였다. 막내 동생을 아끼는 오빠의 마음과 시누이를 애틋하게 여기는 올케가 함께 만들어 보낸 고향의 맛 손두부가 도착했다. 당장 한 모 꺼내어 뜨끈뜨끈하게 만들어 한 볼테기 먹었다. 그래 이 맛이었어! 두부 한 판 다 먹을 동안 식구들과 어린 시절 추억, 할머니의 정, 고향의 맛을 나눠야겠다. 언니, 오빠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