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 같은 씨앗이 촘촘히 박힌 빠알간 딸기 한 팩을 냉큼 바구니에 담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딸기를 좋아하는 손자에게 줄 요량이다. 딸기팩 만 봐도 빨리 달라고 앙증맞은 엄지와 검지를 펴서 가리키는 9개월 아기. 어쩜 딸기 맛을 알았다니..
지난주까지 손자와 함께 생활했다. 이유식을 참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이는 모습에 내 딸이지만 대견하고 고마웠다. 난 그렇게 정성 들여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지 못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쌀과 오트밀로 밥 짓고, 각종 야채는 찜기에 쪄서 각각 다진다. 고기는 찬물에 담가 핏물 제거한 뒤 푹 삶아 포크로 잘게 으깨고, 생선은 샐러리와 건생강 조각을 끓는 물에 넣고 찜기에 쪄서 비린내를 잡는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참 예쁘다. 살림 초보가 이유식 만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부엌에 한 나절은 서 있는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걸 보니 엄마가 되었구나!
엄마의 정성에 보답하듯이 손자는 식사 시간에 그릇을 싹싹 비운다. 한 수저 오물오물 먹고, 한 수저 더 먹으려 입을 아~ 하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육아의 힘든 몸이 눈 녹듯이 스르륵 사라진다. 이유식을 적응할 때쯤 식간에 과일을 먹게 되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오는 딸기가 첫 과일이다. 작게 잘라 먹이다 보면 2-3개는 순식간에 먹는다. 연두색 꼭지 부분은 잇몸으로 오물오물 씹어서 먹는다. 손자의 성장과정을 보며 아이들 키울 때 미쳐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손자에게서 알아가는 재미가 더 있다. 감기로 며칠간 고생하면서도 딸기는 여전히 잘 먹는다. 요즘 한창인 딸기를 볼 때마다 손자의 오물거리는 입이 생각나서 딸기팩을 집어 들고, 나는 계속 행복할 것이다.
딸기는 이렇게 나에게 사랑으로 온도를 높이고 있는데, 딸기에 대한 온도가 낮았던 적이 있다. 역시 엄마와 관련이 있다. 결혼 후 어느 봄, 친정에서의 일이다. 엄마의 친정, 즉 외갓집은 집과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빈집으로 너른 마당이 있다. 마당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그곳에 모종도 심고, 추수 후에는 보관창고로 이용하기도 한다. 비닐하우스 한 켠에 딸기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모종은 매년 줄기를 뻗고 주렁주렁 딸기가 달린다.
때마침 서울에서 온 사촌 올케들이 마당으로 들어오며 손에 그득 딸기를 따서 먹으며 들어오는 게 아닌가!! “형님 딸기가 잘 익었네요”라며 친정 올케에게 말을 건넨다. 아뿔싸, 이런~~~ 시골에서는 잘 익으면 먹으려고 기다리던 딸기를 홀랑 따서 먹는 게 아닌가. 바쁜 농사철은 시장에 가기도 힘든데 말이다. 올케가 뭐라고 말하지 않으니 나도 말하지 않았다.
“서울 사람은 슈퍼에서 사 먹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물론 눈앞에 빨간 딸기를 그냥 두기가 아쉽고 신기해서 그랬을 것이란 걸 이해할 수는 있다. 점잖은 친정 식구들이 나보다 더 속이 상했겠으나 오랜만에 온 사촌들이라 말하지 않은 것이다. 사촌들은 기억 못 할 일을 나만 기억하고 있겠지..
엄마가 언제인가 딸기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속상하다 지금은 어느 때나 실컷 사드릴 수 있는데 말이다. 올봄 엄마 산소에 갈 땐 꼭 딸기를 가지고 가야겠다.
잇몸으로 오물오물 딸기 먹는 증손자의 모습을 엄마가 본다면 사슴 눈 닮은 엄마눈에서 꿀딸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