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중엔 스스로 노력해서 이름을 날린 사람도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오원 장승업일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그림을 배운 적도 없이, 오직 혼자서 중국의 명화들을 보고 그림을 익혔다. 그렇지만 그가 붓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멋들어진 산수가 되고, 사람이 되고, 동물이 그려졌다.
장승업은 일자무식이라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인물이 화가로서 이름을 날린 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그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서울 양반집 머슴살이로 들어갔는데, 마침 주인어른이 그림을 좋아하여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주인이 그의 타고난 천재성을 알아채고 뒤를 보살펴준 덕분에 화가로서 이름이 날리게 되었다. 임금님이 그의 명성을 듣고 궁중으로 불렀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자유분방하여 어디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했다. 결국 갑갑한 궁중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세상 무엇으로도 잡아맬 수 없는 장승업의 호방한 성품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나더러 장승업 최고의 명작을 하나 꼽으라면 망설임없이 <호취도>라 말할 거다. 독수리의 깃털과 나무의 결 하나에도 정성을 들여 섬세하게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독수리 그림 가운데 가장 완벽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림 왼편의 나무둥치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멋들어지게 꺾여 있고, 그 위에 두 마리 독수리가 앉아 있다. 한 마리는 몸을 숙여 아래를 쳐다보고, 또 한 마리는 외발로 서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이다. 억센 발톱과 날카로운 부리, 어딘가롤 쏘아보는 듯한 매서운 눈빛에는 생기가 넘쳐흐른다. 보는 이들이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특히 화면 위쪽의 나뭇가지를 잡고 몸을 비튼 독수리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호쾌한 붓질을 통해 화가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것이 <쌍치도>다. 두 작품은 전체적인 구도나 분위기가 서로 닮아 있다. 위쪽의 숫독수리와 수꿩이 나뭇가지에 앉아 역동적으로 몸을 비튼 모습이나 아래쪽의 암독수리와 암꿩이 다소 얌전히 고개를 돌린 모습이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호취도>가 암수 한쌍의 독수리를 그렸으니당연히 <쌍치도> 또한 암수 한쌍의 꿩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래쪽의 암꿩으로 보이는 새는 암꿩이 아니라 메추리다. 엉뚱하게도 수꿩과 메추리가 짝이 되게 그린 것이다. 이는 천재화가의 우연한 실수일까? 다른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장승업의 장난기가 깃들어 있는 것일까?
오랜 세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혹 여기에 대해 아시는 강호의 숨은 고수가 있다면 꼭 한 말씀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