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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자객 May 09. 2019

심심풀이 명화 이야기 - 신윤복 <미인도>

아름다운 꽃을 보면 자연스레 눈길이 쏠리듯 미남 미녀에게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 인형 같은 아이돌 가수나 영화배우들이 인기를 끄는 비결이기도 하다. 화가들이라고 다를 거 없다. 미인을 그리고 싶어한다.


다빈치가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를 그렸고, 베르메르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렸고, 루벤스가 <수산나 푸르망의 초상>을 그렸다. 그럼 우리나라는? 신윤복이 <미인도>를 그렸다.


세련된 묘사와 섬세한 붓질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그림을 보면 한떨기 목련꽃 같은 아리따운 조선의 미인이 다소곳이 서 있다. 앳되고 청순해 보이는 얼굴, 가냘픈 어깨와 천으로 질끈 동여맨 가는 허리, 그리고 치마 아래로 살짝 드러난 버선발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얼굴 부분을 더 자세히 보자. 곱게 빗은 머리칼, 고운 이마에 초승달같이 그려놓은 눈썹, 맑고 투명한 눈망울, 아담하게 뻗어내린 코, 작고 도툼한 앵두 입술, 몇 가닥 흩날리는 귀밑머리, 갸름하면서도 동그스름한 턱선 등이 여성미를 한껏 풍기고 있다. 수줍은 듯 몸을 살짝 비튼 채 살포시 눈을 들어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아리따운 조선의 미인상이다.


그런데 좋은 보석도 그것을 잘 갈고 닦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타고난 미인이라도 제대로 꾸미지 않으면 본래의 아름다움이 살아나기 어려운 법이다. <미인도>를 보면 조선 시대 여성들이 어떻게 멋을 부렸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의상을 보자. 위의 저고리는 짧고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가 드러나는 데 반해 아래의 치마는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잔뜩 부풀린 모습이다. 이런 의상이 당시에는 최첨단 유행 패션이었는데 이런 저고리를 ‘삼회장 저고리’라 부른다. 목의 깃과 소매부리, 그리고 겨드랑이 세 곳을 다른 헝겊을 대서 꾸민 것이다. 바느질을 많이 해야 했기 때문에 값나가는 고급 의상이었다.

살짝 풀어헤친 옷고름 한켠에는 노리개 장식이 있다. 노리개는 옷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던 부녀자들의 장신구다. 그림 속 여인이 차고 있는 노리개에는 옥구슬 세 개가 달려 있다. 그녀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한 손으로 옥구슬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저 여인은 지금 저고리를 여미는 중일까? 저고리를 푸는 중일까? 여기에 대한 논쟁이 심심찮게 있는데 나의 개인적인 견해는 후자쪽이다.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버선발을 주목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여성들의 발목은 오랜 세월 치렁치렁한 치마 속에 꼭꼭 감춰져 있었다. 여성들이 남성처럼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여성 운동가 아멜리아 블루머가 바지입기를 주장한 이후부터다. 그러니 여성이 발목을 드러낸 것은 기껏해야 백년 남짓한 세월이다. 유럽에서는 여성이 남성 앞에 발목을 보이면 하늘이 두쪽 나는 줄 알았고, 동양에서도 마음을 주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발목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 지금 버선발을 살짝 보이고 있다.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살짝 보이는 게 더 사람의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법이다. 옷고름을 푸는 중이 아닐까? 이건 순전히 내 의견이니 여기에 반론이 있으면 더 좋을 법도 하다.


시선을 옮기면 머리 장식도 예사롭지가 않다. 머리 모양이 좀 거짓이다 싶게 크게 똬리를 틀고 있다. 이것은 진짜 머리카락이 아니다. ‘다리’라 불리는 일종의 가발이다. 여자들이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려고 덧넣은 장식용 딴머리다.

당시 조선 여인들 사이에는 이런 트레머리가 하나의 멋이고 유행이었다. 이런 사치스런 머리 장식을 위해 재산을 낭비하는 일이 많았다. 이것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자, 영조 임금 때는 가체를 금하고 대신 족두리를 사용하게 하는 가체 금지령을 내렸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한 부잣집 며느리가 이 가체를 얼마나 무겁게 하였던지 갑자기 방에서 일어서다 목이 부러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사극에 출연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그 무게 때문에 가체를 가장 힘들어 한다고 하니 아주 거짓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이 그림 속에는 마지막 남은 한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여인은 언뜻 보기에 서 있는 모습 같지만 실은 어딘가에 살짝 걸터앉은 모습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여인의 얼굴 왼쪽을 보면 한문 글씨가 흘림체로 적혀 있는데, 첫 두 글자를 풀면 반박(盤礴)이다. 원래 반박이란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것을 뜻하지만 높은 의자나 책상 같은 데 걸터앉은 걸 가리키기도 한다. 여인의 치마 가운데가 불룩한 모습이나 치마 밑으로 삐죽 나온 버선발을 보면 살짝 앉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인이 앉은 모습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전체 키의 높이를 눈으로 가늠해보면 여인은 분명 서 있는 모습이다.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건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건지 쉽게 의문이 풀리지 않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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