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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불

부부전쟁의 휴전선

by 재섭이네수산

그와 그녀의 전쟁의 이유는

낯부끄러운 사소한 희생정신을

서로에게 강요하다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것 좀 먹자!

만나기 전 나눈 활자를 활로 삼아

한 글자는 한 화살이 되는 전쟁터가 된 카카오

한 번을 지지 않고 서로를 향해 쏘아댔지만

한쪽의 승리가 정해지지 않은 팽팽한 접전.


2차전은 음성지원서비스를 장착하여

한 마디 한 말씀 주옥같은 음색으로,

마치 치아 무너진 성에서

터진 입술 사이로

더 부르트도록 쏟아져 나오는 된소리처럼

안타깝게 절제라곤

눈 씻고 찾아뵈려야 찾아뵐 수 없는

이미 두 번의 절을 마친 상태.

혈관 잡는 유혈 사태.


고군분투는 너나 나나 마찬가지

내세울 것 없는 가문을 걸어가며 가네 마네,

지키지도 못할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는 결의,

조상님을 사람 아닌 견으로 삼겠다는 어불성설,

에라이 모르겠다 막말을 투척하고,

열받은 뱃속이 팽창하더니 식욕은 반토막 난다.


말발이 약한 그가

쾅 먼저 문을 닫고 안방으로 후퇴하면

살아있는 건 입심뿐인 그녀가

뜨거운 분루 삼키며 다시 적진 속으로.


분기탱천한 그가 먼저 잠든 이불속에서

수면으로 스트레스를 불태우고 있는지

바닥에 깔린 요가

그녀 자리까지 따스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가 정온동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

열기기관차처럼 시끄럽게 뿜뿜 뿜어대는

그놈의 화통소리에 입을 틀어막고 싶다가도

그가 잊지 않고 틀어준 내 자리 온수매트에

어느새 마음이 스르르르르.

한 이불속이 곧 휴전선이 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내일 또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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