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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사랑 받는다는 것은>

다시 쓰는 결혼 일기- 2월 2일 자

by 재섭이네수산

마치 잠에 한이라도 맺힌 듯 배고파도 참고, 화장실 가고 싶어도 참으며 오랜만에 쉬는 일요일이라고 하루종일 잠을 퍼질러 잤다. 얼마나 깊이 오래 잠들었는지 핸드폰 알람도 지쳐서 울기를 거부하고 내게서 등을 돌렸으니, 말 다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 갑자기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찾아냈다. 호스피스 발표문. 지형 씨가 나를 마음에 담았다는 호스피스 발표문을 찾아냈다.


호스피스 :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 활동.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희생이라는 것, 보통의 정신으론 하기 힘든 일 아니던가?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만큼 숭고한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그것을 해낼 정신과 의지를 가졌는가? 스스로에게 물었고, 없기에 기회가 된다면 얻기 위해 도전해 보고자 한다.


지형 씨의 아버지가 암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나의 이 평범한 발표문이 자신을 울렸다고 했다. 적어온 쪽지를 들고 벌벌 떨며 읽는 나를 보고 있자니 웃기고, 내용을 듣자니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아 슬프고, 그래서 나를 유심히 보았고, 발표를 끝내고 마지막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내가... 너무 예뻤다나 어쨌다나.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그 흔한 말이 내게 적용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당사자인 나조차 믿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일 수 있다니. 그거는 참말로 기적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이 만든 기적. 그것은 7개의 행성이 일렬로 서는 우주쇼보다 더 가끔 일어나는 충돌이라고 본다. 기가 막힌 내 인생의 첫사랑 기적이라니, 나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는 그의 닭살멘트가 내 꺼라니! 나 말리지 말아 주시오! 좀 취하게.


자다 말고 이게 무슨 생코미디인가 싶지?

꿈인가 생시인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감기가 떨어져 나가고, 깨진 핸드폰이 수리를 마치고, 각기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핸드폰 선물 및 맛있는 음식을 제공받는 요 며칠은 일요일 하루종일 꿈속에 있었던 것보다 더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사랑받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좀 더 취하자.

좀 더 잠들자.

좀 더 맞잡자.

좀 더 웃어보자.

사랑받는다는 것은 황폐한 사막 속에서 홀로 핀 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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