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해명이었으나 남이 듣기에는 변명이었을 때, 차라리 침묵이 나았구나 느꼈다. 침묵도 어쩌면 그 상황들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게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이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았는데 분해서 한 마디 했을 때 일어난 더 억울한 일이고, 그래서 이 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묵할 수 있는 참을성을 기르자! 결심한 첫 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약간 침묵 보다는 참을성을 기르자에 가까울 수도 있다.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는데, 너무 바쁠 때라 배울 사람이 없었다. 일단 나더러 배워 두라고 해서 하나도 알지 못하는 기계를 일단 배웠다. 동영상까지 촬영해가며 메모해가며 배워두었는데, 얼마나 복잡한지 진짜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한달 뒤 어느날 내게 그 기계를 작동하라는 갑작스런 명령이 떨어졌다. 내 일도 있는데 일단 그것을 제껴두고 부랴부랴 기계실로 달려갔다. 전에 촬영해놓은 동영상을 찾아서 그대로 해보려고 했으나 와~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았고, 귀가 있었으나 들리지 않았으며, 뇌가 있으나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기계를 망가뜨릴 것만 같아서 일단 멈추고, 이 일을 시키신 과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갑자기 욕설과 함께 빨리 해내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데, 와~ 간이 떨어졌던 것 같다. 간만 떨어졌으면 되었을텐데 정신도 같이 떨어졌는지 어찌할 바를 몰라 순간 멍하니 있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내가 제껴놓은 일은 언제 마감이 되느냐고 하는 나의 본업에 관련된 재촉 전화였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그 일먼저 쳐낸 다음 기계를 다루러 가야겠다 하는 찰나 과장한테 전화가 와서 또 한 번의 욕을 먹었다. 이번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오전 내로 해내라고 하는데, 다시 나는 기계실로 돌아와 전에 내게 기계를 알려주고 간 다른 부서의 후배애게 전화를 걸었다.
"그건 매일 하는 우리도 힘든데 한 달 전에 그냥 보기만 하신 분이 어떻게 해요. 제가 지금 출장 중이라 내일이나 알려드릴 수 있을 텐데요."
"안돼."
"왜요? 그 아무개 과장이 뭐라 해요?"
"응.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내라고 했거든. 나 해야 돼."
"디게 웃기네. 잠깐 끊어봐요."
그러고 후배는 전화를 끊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님께 전화가 왔다.
"내가 과장한테 말할테니까 주임은 그냥 자기 일 하고 있어."
다행이다 생각하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내 일을 하려고 하는데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C. 삐삐삐리리야~~~ 내가 언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다 해내라고 했어? 어?"
하면서 소리소리 질렀다. 내가 저 인간의 성격을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후배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바람에 일이 커지는구나 싶었다. 과장 놈의 지랄 발광을 쳐들은 다음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그런데 그 과장은 부장님께 욕 먹은 게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사무실까지 찾아와 지랄을 해대기 시작했다.
"너는 니가 못해서 물어본 거면서 왜 그딴 식으로 말해서 왜 날 욕을 먹게 만들어? 어? 미친 거야? 말귀를 못알아 듣는 거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내가 언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라고 그랬어? 어?"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무조건 해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내라. 그러셨잖아요. 그래서 전에 나한테 알려준 그 후배에게 전화해서 다시 알려달라고 한 게 이렇게 욕 먹을 일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속은 시원했지만 나는 지르는 것보다 침묵이 낫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뒤에 부분적으로 너무 감사했다.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그 과장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되는 행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