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결혼 일기-어느새 채워질 너의 빈자리>
내가 참을성을 소유한 바가 아주 얄팍하여서인지, 통증에 관련되어 아주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탁월하게 탑재하여서인지, 나는 꼬집는 사람이 제일 싫다. 볼때기를 꼬집히면 꼬집히는 그 순간 딱 무지하게 아프고, 시간이 지나면 무지하게 아픈 그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무지하게 아프고, 계속 너무 아프니까 열받아서 머리도 아파오다가, 나중에 꼬집은 사람이 무지하게 미워진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숨겨진 약점.
갑자기 화제 전환하나 내 약점을 기억해 주시오.
남편은 나보다 말빨이 매우 약하다. 나는 이 한국 땅에 태어나 쭈욱~ 한국에 살면서, 제주도도 외국 아니냐고 우기는 매우 무지한 한국 지향주의자이면서, 외국말은 한 글자도 못하는 영어까막눈이자, 한국 국적 하나 달랑 소유한 자칭 주디 박사이다. 흔한 공대를 나온 평범한 한국 남성이 그런 나를 말빨로 이기려고 든다는 것은 맨몸으로 히말라야를 오르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즉 무모하고 죽기를 각오한 어리석은 도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말빨 약한 남편은 몇십 년째 나에게 그런 도전을 종종 하곤 한다. 물론 결과는 처절한 패배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 어찌 되는가? 남편은 나의 숨겨진 약점을 간파하고 있는 유일한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에, 마치 여름 한 나절 귀찮게끔 볼때기에 달려드는 파리를 내쫓는 그 비호 같은 손놀림으로, 내 볼때기를 꼬집기 위해 열손가락을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달려든다. 나는 마치 일본 순사에게 잡혀가지 않으려는 불쌍한 처자처럼 온몸으로 미친 듯이 팔을 휘휘 저으며, 볼때기 사수를 위해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를 실행하며 남편에게 선빵을 날리기도 하면서 할퀴기도 하면서 매우 격렬하게 저항하는데, 나의 저항은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잦다. 수시로 꼬집힌다. 물론 그래서 오늘도 꼬집혔다.
나는 그를 증오한다. 요새 더더욱 물오를대로 잔뜩 오른 통통한 내 볼때기를 왼쪽 오른쪽 사정없이 꼬집은 그, 아니 공구를 다루며 축적시킨 그 투박하나 빠른 손의 재간을 저주한다.
내 그동안 숱한 날들을 꼬집혔지만 오늘에서야 이 글을 투고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내 오동통한 볼때기에 깊이 파인 상처가 남았기 때문이다. 나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던 그의 손톱이 할퀴고 간 흔적임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도 발뺌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책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후회의 몸짓을 보이며 손을 싹싹 빌면서 걸어가지만, 내가 자기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는 경험에서 오는 경계심을 버리지 못하고, 몸을 젖히지도 못한 채 눈은 나를 손은 서랍을 감각으로 열어 꺼낸 물건은 바로 후시딘. 빠르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파인 내 볼에 발라주었지만 나는 비장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금테 두른 초콜릿을 가져오라 명령하고, 받아 든 나는 초콜릿을 까먹으며, 파인 뺨을 다시 채우기 위해 여러 개를 먹는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버렸다는 것이 함정. 남편이 이것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처벌은 면했다고 방심한 틈을 이용해 나는 그에게 형을 집행하였다.
"페레로로쉐가 반밖에 안 남았네? 이만한 벌금형인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
그는 와사비가 잔뜩 든 초밥인 줄 모르고 좋아라 하며 씹었다가 놀라고 마는 뭐 그런 느낌의 표정을 하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벌금형을 감사해하자 하며 얼른 인터넷 서핑을 하여야만 했다.
내 볼을 꼬집은 네가 유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