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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by 재섭이네수산

지금의 내가 다른 무엇이 된다는 것은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상상보다 터무니없겠지?

그럼에도 나는 상상할게.


내가 만약 강아지였다면 토마토를 즐겨 먹었을 거야.

그리고 당신이 웃을 때마다 꼬리를 흔들었겠지.


내가 만약 토마토라면 물을 주는 농부의 발소리에 가슴 떨렸을 거야.

햇살보다 먼저 그의 그림자를 알아봤겠지.


내가 만약 농부였다면 작물들을 위한 비료를 만들었을 거야.

그들이 아프지 않도록, 나보다 먼저 자라나도록.


내가 만약 퇴비였다면 모두의 코를 왕자극했을 거야.

하지만 나 없인 아무것도 잘 자라지 못했겠지.


내가 만약 지독한 냄새였다면

나를 위해 손 버리는 걸 마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풍기지 않았을 거야.

그 사람의 마음은 이미 나를 품고 있으니까.


내가 만약 배려심이었다면

누구에게나 자주 베푸는 사람에게 돈을 붙여줄 거야.

그래야 그 마음이 더 오래, 더 넉넉히 퍼질 테니까.


내가 만약 돈이라면

누구에게나 같은 양으로 머무를 테야.

그래서 누군가의 꿈이 크다고, 다른 이의 꿈이 작아지지 않도록.


내가 만약 공평이라면

너무 당연하고 흔한 공기처럼 잊혀질 테야.

그리고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괜찮았으면 해.


내가 만약 공기였다면

한 화분이라도 정성껏 키우는 사람의 창가에 음이온으로 가득할 거야.

그곳에서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치유가 되도록.


누군가에게 필요한 무엇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어.

그 무엇이 작아도, 그 무엇이 멀어도 상관없어.


그리고 내가 만약, 그 무엇이라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곁에 당신이 상상하는 그 무언가로 머무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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