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작은 다정함의 시작
나는 틀렸다.
정답이란 게 없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늘 정답에 닿지 못했다.
나는 잘못했다.
남들은 모를지라도,
나는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틀어졌는지 안다.
나는 서툴렀다.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는 동안,
나는 겨우 버티는 것조차 벅찼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나의 자리를 갖지 못하고
늘 주변에 머문다.
이렇듯 나는
나를 질책하는 데 익숙했다.
남들이라면 한 번쯤은 웃고 넘길 실수에도
나는 지독하게 나의 잘못을 찾아내 꾸짖었고,
아직 미숙해서 그럴 수 있는 일에도
너는 왜 이것밖에 안 되냐며
내 안의 목소리는 쉽게 용서해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내가 느끼는 감정조차 쉽게 믿지 못했다.
슬퍼도, 화가 나도, 기뻐도 늘 한 발 물러섰다.
그러다 문득
마음속에서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나는 왜, 내 감정에 이렇게 인색할까?"
남에게는 참 관대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에겐
마음을 다해 위로를 건넸고,
서툰 후배의 실수도 너그러이 감쌌다.
누군가가 불편하게 굴 때면,
그에게도 그럴 만한 사연이 있겠지 하며
애써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어땠을까.
왜 나는 나에게만
그 너그러움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왜 내 감정엔 늘 조건을 붙이고
정당한 이유를 증명해야만
조금쯤 인정해 주는 척했을까.
나는 남에게 내어준 따뜻함의 절반만이라도
나에게 건넬 줄 몰랐던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엔 서툴렀고,
나를 이해하는 일에는 늘 한발 늦는 사람이었다.
답을 찾고 싶었다.
나조차 내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심리학 자료들을 찾아보고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를 이해하는 문턱에
천천히 닿을 수 있었다.
그 시작은 '높은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민한 사람은 자기감정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지나치게 신경 쓴다.
그 결과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이 감정은 괜찮은 걸까?',
'이런 감정을 드러내면 민폐 아닐까?'
'혹시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불신하는 경향이 높다.
(Leary와 Kowalski의 사회적 자기 인식 이론)
게다가 나는 감정에도
늘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곤 했다.
'다른 사람은 더 힘든데,
내가 이 정도로 힘들어해도 되나?'
'이 일이 서운하다는 건,
내가 얕고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뜻 아닐까?'
감정은 느껴지는 순간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내 고통을 자격 없는 것으로 몰아세우며
'이기적이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감정의 유효성을 스스로 지워나갔다.
타인에게는 공감하며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만 유난히 엄격한 사람일수록
우울과 자기 비난의 경향이 더 짙다.
(Kristin Neff의 자기 자비 연구)
나는 기질적으로
불안과 우울 성향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감정을 느끼면서도
곧바로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를 함께 품었다.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같은 의심이 습관처럼 반복되었다.
부정적인 자동사고는
자기감정조차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Beck의 인지이론)
그렇다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나답게 살고, 내 감정을 믿으며,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는 삶은 불가능한 걸까?
그 물음 끝에서
나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가는 방법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내가 나의 감정을 믿고 수용하기 위한
4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감정의 '진실성'과 '정당성'을 구분하기.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진짜'이다.
그 감정이 옳은가, 이기적인가 하는 판단은
나중 일이다.
감정은 반응 그 자체이기 때문에 유효하다.
행동은 나중에 조절하면 된다.
둘째, 자기 자비훈련.
내 감정을 공감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이런 감정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워."
"지금 내가 힘들구나."
비판이 아닌 인정의 말로 내 마음에 말을 건다.
나는 이 연습이 어려워 처음엔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그 말을 거쳐 나에게 천천히 되돌려주었다.
셋째, 감정을 글로 써보기.
예민한 사람에게
감정을 언어로 구조화하는 일은 매우 효과적이다.
'나는 슬프다'보다
'나는 지금 인정받지 못한 느낌이 들어 속상하다'
처럼 정확한 이름표를 붙이면
감정이 덜 괴롭게 느껴진다.
넷째, 감정에 평가보다 '잠깐 멈춤'을 주기.
'지금 이렇게 느끼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 일단 느끼고 보자.
감정의 배경과 맥락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만든다.
반사적으로 검열하지 않고,
그 감정이 어떤 자리에서 태어났는지를 살펴본다.
물론 이런 방식이
매 순간 완벽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문제라고 여겼던
나의 감정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 귀 기울이며 방법을 찾아가는
이 과정 자체가
이미 나를 조금씩 치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조용히 적어본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참 잘했어.
그렇게 애썼구나.
힘들었겠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너라서 다행이야.
이 말들을 나에게 고스란히 들려준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한 위로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 오래 닿지 않았던 말들.
혹시 나처럼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책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전하고 싶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당신은 그만큼 더 따뜻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고.
그 섬세한 마음을 이제는
자신을 향해 돌려주는 일만 남았다고.
그리고 그 마음은,
당신이 살아가는 모든 날에
충분히 어울릴 자격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