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꽃밭

by 마당넓은 집


언제부터였을까, 눈에 꽃이 찾아들었다. 꽃을 쫓아 다녔고, 스마트폰에도 온통 꽃 사진이 되었다. 시골집에 꽃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오일장에 들러도 찬거리는 양념이 되고 늘 꽃나무가 주인이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빈 땅에 나무를 심었다. 하나, 둘 꽃이 피어나면서 꽃도 제자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키 작은 것은 앞자리, 여러해살이는 뒤로 가야 헌다는 것과 계절에 따라 잘 배치해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단 이틀, 주말에만 나는 그들과 교우한다. 꽃분홍 함박은 그 빛이 너무 고와 혼자 보기 아쉽다. 한 주일 뒤 다시 찾으면 바닥에 떨군 꽃잎만 서럽다. 지난해까지 자리만 지키던 아기 함박이 드디어 봉우리를 올렸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만 했는데 수줍은 상아색이었다. 작은 가지에 불쑥 오른 봉우리가 간밤에 나 몰래 피어오를까, 선잠으로 밤을 보낸다.


아침이 되었다. 부끄러움으로 파리해진 소녀처럼 반쯤 얼굴을 숨기고만 있었다. 햇살을 따뜻했고 바람도 적당했다. 조바심이 나서 보고 또 보고 하다 잠깐 마음을 놓은 사이, 소담히 입을 열었다. 꽃을 피웠다. 그 모습에 가슴이 뜨겁게 벅차올랐다. 누구라도 불러 함께 보고 싶었다.

고요한 시골 마을이다.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으니 스마트폰속에 정성 들여 옮겨 담는다. 보들보들, 야들야들, 꽃잎은 입속에서 녹아버릴 샤벳트 아이스크림만 같다. 어디에서 왔을까, 기다린 일 년을 오늘 반나절에 모두 품어야 하니 미안함만 가득하다. 좀더 오래오래 봐줘야 하는데 짧은 주말이 아쉽기만 하다. 좀 더 천천히, 깊이 들여다본다. 예쁜 모습 보여준 것에 감사하다. 꽃들과 나누는 대화도 점점 익숙해진다.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고 사느라 바빴다.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에도 하루가 부족하였다. 아이들이 품을 떠나면서 가려졌던 세상의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부터 꽃이 내게로 왔다. 마당에 꽃을 심으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던 엄마는 아파트 정원에 피어있던 장미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 그게 그렇게 이쁘우." "넌, 안 이쁘냐." 엄마는 내게 다시 물었다.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에고, 이렇게 이쁘게 피려고 얼마나 힘들었겠냐." 혼잣말도 하였다.

고향 집에는 작은 꽃밭이 있었다. 몇 안 되는 꽃들이 심어있었다. 수국, 상사화, 황철쭉 이런 꽃나무들이었는데 계절마다 잊지 않고 피어올랐다. 꽃이 피고 질 때면 마당에서 계절을 읽곤 하였다. 젊은 엄마는 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농사일과 돈이 되는 일거리가 최고였다. 예쁜 것을 보여주면 "에이, 돈도 안 되는 것 치워라." 하였다. 그때 엄마는 꽃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리들은 장성해서 고향을 떠났고 얼마뒤 마을에는 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엄마의 집도 꽃밭도 사라졌다.

엄마와 함께 살아보니 꽃도 좋아하고 예쁜 옷도 좋아하고 맛 나는 것도 잘 먹었다. 엄마가 변한 줄 만 알았다. 우리 엄마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나. 이상한 눈빛으로 엄마를 흘겨보았다.

어느 날 엄마가 우리 서영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애들은 일곱이나 키우면서 제대로 한번 이뻐해 보지도 못했네. 서영아 너 할머니 딸 하자.” 서영이와 엄마는 마치 모녀지간 같았다.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함께 자고 늘 함께 다녔다. 아이는 할머니를 엄마처럼 따랐다. 무엇이든 할머니 편이 되었다. 엄마도 서영이를 이쁘게 살뜰히 보살폈다. 서영이는 늘 "나는 할머니랑 같이 죽을 꺼야. 할머니 오래오래 살아." 어린 날 못해 본 애교를 우리 서영이가 모두 하였고 엄마도 내게 주지 못한 사랑을 맘껏 서영이에게 쏟아부었다.

이제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간다. 꽃이 좋아진다. 어린 날에 느꼈던 그 삭막했던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사십을 갓 넘긴 젊은 엄마에게는 일곱 자식을 남겨 두고 떠난 남편 몫의 일거리와 삶이 있었다. 엄마의 삶은 여자도 엄마도 될 수 없었다. 오로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지닌 한 집안의 가장 일 뿐이었다.

어린 나는 엄마가 무서웠다. 싫지는 않았는데 곁에 있으면 불편했다. 할머니 곁에서 잠을 잤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혼자 잤다. 엄마는 포근하고 따뜻해야 했다. 책에서도 그랬고 다른 친구들의 엄마도 그랬다.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 엄마 같은 엄마가 되기 싫었다.

우리는 다른 집 아이보다 학교 납입금을 먼저 냈고 배고픔도 겪지 않았다. 아버지가 있는 집 아이만큼 공부도 했다. 엄마의 반찬은 항상 맛났고, 이른 새벽 논밭으로 나가면서도 항상 밥솥에서 밥이 끓었고 냄비 속에 찌개도 끓고 있었다. 그런 것들은 당연한 일이었고 엄마는 인정 없이 차가운 사람일 뿐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몹시 아파서 자리에 누웠다. 심하게 앓는 소리도 냈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모습이었다. 엄마가 이러다 죽지 않을까, 밤새 잠에 들지 못했다. 무서운 엄마였지만 소중한 엄마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엄마가 없으면 우리는 ···. 그때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얼마 뒤 대학 진학을 위해 객지로 나오게 되었고 엄마와는 그런 데면데면한 관계로 지냈다. 세월이 흘러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내 딸의 엄마가 되어달라고 엄마를 졸랐었다. 그렇게 엄마를 바로 알게 되었다.

꽃밭에 앉아서 꽃향기를 맡는다. 언젠가 엄마가 장미 향을 맡듯이. 나도 엄마처럼 우리 서영이에게 따뜻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다. 서영아, 너 할머니 딸 하자던 엄마가 내 곁을 떠난 지 수년이 되었다.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서영이 딸을 안고 '너 할머니 딸 하자'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를 지켜보고 계실 엄마에게 나의 꽃밭을 보여주고 싶다. 언제나 종종거리며 바삐 사셨던 우리 엄마, 이제는 느긋이 뒷짐 지고 꽃향기를 맡으며 꽃밭을 걷게 하고 싶다. " 아이고, 예쁘게도 키웠네. 이쁘다. 서영이도 있으면 좋을 텐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우리 집 꽃밭은 '춘랑이네 꽃밭' 이라 이름 짓는다. 엄마가 언제나 찾아와 거닐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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