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아직 어둡다. 거실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린다. 자리를 뒤척이며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소리는 공명음이 되어 계속 울린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전화기를 든다.
누굴까, 대체 무슨 일이지. 짜증과 함께 온 것은 긴장이다. 이런 신새벽에 걸려 오는 전화는 대부분 걱정을 담은 일이다. 집안 어른들을 떠올린다.
“여보세요.” “너 시간 있니” 큰오빠다. 다짜고짜 묻는다.
“오빠, 무슨 일이야. 아침부터. 밑도 끝도 없이”
“ 응. 국방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큰아버지 유해를 찾았나 봐.”
소리가 허공에서 떨어진다. 육이오 때 전사하신 큰아버지는 산소에 얼마 전까지 벌초를 해왔다. 큰아버지는 강원도 펀치볼 고지에서 전사하셨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그곳에서 무명용사의 유골을 찾았다. 어린 나이에 참전한 큰아버지는 자식이 없었다. 동생도 없으니 가장 가까운 조카 두 명이 유전자 검사를 요청받았다. 오빠는 이미 했고, 가능한 동생을 알아보기 위한 전화였다. 밤새 잠 못 잔 듯, 오빠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큰아버지가 전설처럼 돌아올 것 같다. 어릴 적 할머니가 기도하듯 읊조리던 그 레퍼토리. “너그 큰아버지, 얼굴도 훤하고 키도 훤칠했지. 죽을 리가 없지, 그리 쉽게, 그까짓 나무상자에 한주먹 허연 뼛가루, 누구 것인지 알아, 너그 큰아버지는 안 죽고 살아 있을끼다. 이북에 끌려가서 통일되면 꼭 돌아올끼다. 얼마나 똑똑했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 그런 사람도 많다고···.”
들녘에 꽃물결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유월 그리고 육일, 일 년에 한 번, 할머니가 외출하는 날이다. 말갛게 씻어놓은 하얀 고무신 코가 서럽게 삐쭉이며 댓돌 위에 놓인다. 연 하늘빛 한복의 동정 깃에도, 굴건같이 둘러쓴 하얀 명주 수건 위에도 하얀 설움이 감돈다. 목적지는 읍내 면사무소 곁, 현충탑이다.
이 강산에 영령이 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이 모였다. 탑에 향을 피우고 꽃을 꽂았다. 향불 곁에 산야의 꽃이 되고 바람이 된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으니, 어머니들의 통곡은 마르지 않았다.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울다 지쳐 헛헛한 웃음만 흘렸다. 천만번을 불러도 대답 없는 아들, 할머니는 어둑녘에야 얼룩진 고무신을 끌며 돌아왔다. 하루의 외출은 끝났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일 먼저 일어났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맸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아들이 하나 남아 있었다. 할머니의 모든 기준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집착하셨다.
아버지는 어디가 아픈 걸까?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몸에 좋다면 온갖 조약造藥은 아버지의 약이 되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은 신앙이었다. 화로 위의 약탕기, 한약 달이는 냄새는 언제나 내 기억의 편린이었다.
해가 산등성이에 걸터앉을 때면 늘 할머니는 언덕 위에 말뚝이 되었다. 우두커니 서서 넋을 잃은 사람처럼 신작로를 바라보던 모습, 그런 모습을 아버지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할머니의 삶 가운데에 죽음이 걸쳐 있었다. 철이 없어 군대에 가면 안 된다고 큰오빠 나이를 세 살이나 줄였다. 손자들도 아들이 셋은 되어야 하나를 잃어도 둘이 남는다고 했다. 우리형제도 아들 둘, 딸 다섯 둔 부잣집이 되었다.
형님 몫까지 다하려던 아버지는 사십을 갓 넘어 세상을 뜨셨다. 그 많은 약탕기에 담긴 기도의 약발은 아버지를 지켜내지 못했다. 남겨진 며느리와 손자들 앞에서 할머니는 마음대로 통곡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 하나 있던 아들의 죽음이었다. 할머니는 더 작아지고 말이 줄었다. 아들을 앞세운 어미는 언제나 스스로 죄인이 되었다.
음력 이월 초하루, 영등날이었다. 팥떡은 시루째 상위에 오르고 양쪽으로 촛불을 밝혔다. 아직 엄동인데 할머니는 찬물에 목욕하고 머리를 곱게 빗어 쪽을 질러 비녀를 꽂았다. 두 손을 모으고 쉼 없는 절을 하며 혼신을 다해 치성을 드렸다. 마치 주술사와 같았다. “신축 생 시월 생이요. 계해생 십이월 생이요.” 큰 손자부터 차례로 일곱 손주들의 이름, 생년 생시를 읊으며 축원의 소지 燒紙에 불을 붙였다. 소지가 떨어지면 얼른 두 손으로 받쳐 다시 하늘로 올렸다. 소지가 잘 오르지 않으면 한해 액운이 낀다는 옛말을 할머니는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의 기도 속에 우리들은 무탈하게 자랐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불일치였다. 할머니와 큰아버지의 기억들만 수면 위로 올려놓고 그냥 아무 일이 없던 것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오빠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서랍에 있었던 훈장과 명예제대 증서를 떠올렸다. 오빠는 그 증서로 아버지의 병적을 확인하고 지역보훈지청에 소명 자료를 제출했다. 이제야 그 탕약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전쟁 중 부상으로 제대한 것이었다. 드디어 아버지는 국가유공자가 되셨다. 아버지 사후 4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고귀한 슬픔을 생각한다. 폭풍처럼 덮쳐온 운명 앞에서 두 아들을 온전히 나라에 바쳤다. 평생을 뇌옥에 자신을 가두고 구순의 인생을 살아내셨다. 아리랑 열두 고개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가셨다.
수많은 유월의 어머니들과 호국영령들이 지켜내신 내 나라 내 조국이다. 가슴에 뜨거움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