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자동차 계기판에 설익은 오렌지빛 도형이 들어온다. '쿵쾅 쿵쾅' 심장이 두근거린다. 모른다는 건 두려움이다. 그저 주유만 하면 달리는 것이 자동차인데 이 처음 보는 경고등은 면허시험장에서 보고 처음이다. 다행인 것은 고속도로 진입 전이라는 것뿐.
때마침 가까이 자동차 수리센터가 보인다. 무작정 찾아가니 오늘은 일요일, 닫힌 문안에 경비 직원 한 명 있을 뿐이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좌로 우로 살펴봐도 아는 것이라곤 타이어 공기압은 이상 없다는 것이다. 두려움만 점점 커진다.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어떻게 하지, 차에 실려있는 각종 농산물들, 그럼 수리는 어디서 해야 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만이 두려움을 키운다.
그때 곁에 있던 동생이 말했다. "언니 지피티에게 물어봐" 문명의 이 기가 가져온 또 다른 친구를 떠올렸다. 계기판을 찍어 지피티에게 묻는다. '이 사진에 경고등이 차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지금 고속도로에 가도 되냐고?'
친절한 지피티가 말했다. 당장의 문제는 아닐 것 같으니 괜찮다고. 지피티가 인간의 자리를 모두 빼앗을 거라고, 지배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것이, 지금 이 순간은 나의 하느님이 되고 부처님이 된다.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혼자가 아닌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혹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혼자가 아니고 동생 가족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책임감이 머릿속에 맴돈다.
계기판에는 'visit your dealer, engin system malfunction' 두 문장이 번갈아 깜박인다. 속도를 고속도로에 맞추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달린다. " 언니야, 우리도 중고등학교 시절 가정, 가사 이런 것만 배우지 않고 실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이 자동차 이론이나 정비 같은 것을 공부시켰더라면 이렇게 졸지 않았을 텐데." 동생의 말을 백퍼 공감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때는 차가 생활 필수품이 아니었다. 부자들만 소유하는 전시품 같은 시절, 우리가 소유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조차 없던 때였다. 교육의 필요성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맘으로는 당장, 내일부터 간단 정비라도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
주말의 고속도로는 11월 마지막 단풍철을 보려는 사람들인지, 마치 명절 전 날 재래시장 앞처럼 끝없이 늘어진다. 평소 2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4시간 넘어 집에 도착이다. 몸이 피로를 인지하고부터는 감사함이 많이 생긴다. 동생에게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 주도 동생 덕에 많은 일을 했다. 곰살맞게 고맙다는 인사는 못했지만 마음 바닥에 차곡히 고마운 마음을 담아둔다.
자동차 고장 알람을 도로에서 경험했다. 점점 더 난관에 부딪힐 일들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도시 살이는 사람들과 부딪치면 살아가는 이는 더 많이 그러한 일들이 생긴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스위치를 찾지 못했다는 선배의 말도 생각난다. 익히고 학습하는 능력과 저장 능력도 예전 같지가 않다.
임상에서 뇌 엠알아이 영상을 자주 본다. 젊은이들의 뇌와 노인의 뇌의 차이는 확연하다. 갖 수확한 호두는 껍질 안에 씨앗이 가득 차서 틈이 없다. 잘 깨어지지도 않는다. 겨울을 지나고, 해가 지나면 호두는 바싹 말라서 흔들면 '때글때글 ' 경쾌한 소리가 난다. 망치로 툭하고 가볍게 쳐도 금세 깨어진다. 껍질과 알맹이는 벌써 멀어져서 따로 놀고 있다. 그 모습과 노인들의 뇌 영상이 겹쳐 보인다. 마른 호두와 같은 뇌의 구조는 퇴행성 뇌의 구조이다. 치매나 뇌의 노화를 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자동차 위험 경고를 경험하면서 회색 뇌의 모습이 눈앞에 번듯인다. 경고등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두려움의 크기는 예전보다 컸다. 그만큼 대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일까 반문도 해보았다. 주의하고 경계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한 경험이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된다는 것과 미리 점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경고등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은 도리어 새로운 도전을 멈추게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고등은 일단 멈춤이나 점검은 반드시 필요하다. 신호를 무시하고 노란 신호등의 마지막 점멸 시기에 내달리다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를 흔히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멈춤도 하고 돌아보기도 해야 하는 계절이 내게 왔다. 좀 더 엄격한 잣대로 나를 측정하며 살아나가는 삶을 스케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