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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Oct 15. 2024

03. 모성 콤플렉스

#  엄마가 되다


사실 난 엄마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뒤섞인 감정으로 도망치듯 한 결혼이라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남편과의 감정도 혼란스러웠던지라 아이를 바로 가질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하지만 연애에 서툴렀던 만큼 임신에도 무지했던 난 덜컥 임신을 했다.


처음 임신인 걸 알게 됐을 때 기쁘기보다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올라와 스스로도 당황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식이 생기는 순간 한없는 모정이 생긴다던데 난 차가운 우리 엄마를 닮아 기쁘지도 않은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심리적 불안 탓인지 심한 입덧으로 몇 달 동안 거의 먹을 수조차 없었다.  


유난히도 덥던 그해 여름 처서를 이틀 남기고 난 조산을 했다. 예정일이 아직 두 달 반이나 남았을 때였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할 때부터 산통이 시작됐는데 남편은 내가 엄살을 부리는 줄 알고 그대로 출근하려 했다.

출근을 말리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지만 남편은 예정일이 아직 멀었으니 아닐 거라며 출근을 서둘렀다.

그때 마침 양수가 터졌고 그제야 남편은 택시를 불렀다. 양수가 터지고도 3일 만에 아이를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끝까지 제왕절개 수술을 해주지 않은 레지던트 의사가 고맙긴 하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와 내 아이는 까딱하면 황천길을 갈뻔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건강했고 인큐베이터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엄마가 된 나는 항상 나의 모성이 불안했다.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도 드라마 같은데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데 난 어색하고 낯설었던 기억이 먼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시 때때로 울어대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너무 고달플 때면 누가 애좀 데려다 며칠만 봐주면 좋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럴 때면 내가 모정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불안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밤에 가끔씩 울음을 그치지 않아 진을 뺄 때가 있었다. 그때도 부족한 내 모정을 아이가 알아차린 걸까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서툴고 부족하기만 한 보살핌에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첫아이가 4살쯤 됐을 때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기다렸던 아이라 그런지 두 아이의 엄마노릇은 첫째 때보다 오히려 수월했다. 아마도 그때쯤엔  어느 정도 엄마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았고 첫아이를 돌본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 비슷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을까?

평소처럼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에 간 어느 날 청소를 마친 뒤 잠시 누웠는데 느닷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  엄마를 만나다


나에겐 오빠가 둘 있었다.

나보다 아홉 살이나 많았던 큰 오빠는 늦둥이 막내 동생인 나를 유난히도 예뻐했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에게도 살갑고 따뜻했던 큰 오빠는 온 동네 사람들이 알아주는 효자였다.

멀리 외지에서 공부하던 탓에 가끔씩 집에 들를 때면 어김없이 농사일을 도맡아 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마도 엄마에게 큰 오빠는 남편이자 아들이자 엄마의 미래였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법이 보호해 주어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거절을 하지 못하던 아버지는 일이 있을 때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불려 다니며 온갖 일을 해주고는 막걸리 한 사발로 퉁치고 들어오곤 하셨다.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했지만 집안에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면 슬그머니 엄마 뒤에 숨어서 모른 척했다. 악역은 항상 엄마 몫이었다. 


철이 일찍 든 큰 오빠는 그런 엄마를 안타까워하며 물심양면으로 엄마를 보살폈다. 그러니 엄마에게 큰 오빠는 단지 자식이 아니라 엄마 인생의 선물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사고로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엄마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고 장례식 때 본 엄마는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한쪽 얼굴이 갈려있었다.


큰 오빠의 죽음 이후 엄마는 모질고 독해졌다. 그때까지도 늦둥이 막내라고 온 식구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나는 갑자기 사나워진 엄마가 낯설고 무서웠다. 생각해 보면 큰 오빠가 죽기 전까지는 엄마는 내게 따뜻하고 살뜰했다. 쭈쭈바가 처음 나왔을 때 먹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장에 가는 날이면 다 녹은 쭈쭈바를 사 오곤 했다.

소풍날이면 없는 형편에도 꼭 새 옷과 새 신발을 사주곤 뿌듯해했다.


그랬던 엄마가 큰 오빠가 죽고 난 후 그동안 관심도 없던 둘째 아들에게 온 정신이 쏠렸다.

아마도 엄마는 큰 오빠의 자리를 둘째 오빠가 채워 줄거라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불행히도 둘째 오빠는 결이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5살이나 위였지만 한글을 나보다도 늦게 떼서 아버지한테 매일 혼이 났다. 동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집안이 시끄러웠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어린 내 눈에도 보이는 사실이 엄마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날 갑자기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처럼 믿고 의지했던 자식이 죽고 나서 엄마가 망가지지 않고 차갑고 독한 엄마로라도 남아준 게 처음으로 감사했다.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 고통의 크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엄마는 어떻게 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웃고 말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자식을 가슴에 묻고 다시 살아갈 결심을 했을까?'

아마도 엄마는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으리라.

순간 울컥 눈물이 터졌고 한번 터진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춰지지 않았다.

내 안 어디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고여 있었을까?


나약하고 불안한 한 가엾은 영혼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나약함은 의존을 낳고 의존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낳는다.

불안한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기심을 키운다. 이기심에 사랑의 자리를 빼앗긴 엄마는 아마도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마음속에 팽팽한 고무줄처럼 날이 서있던 원망과 억울함이 툭 끊어지더니 너풀대다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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