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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Oct 24. 2024

10. 우주가 작심하면 생기는 일

우주가 돕기로 작심하면 생기는 일

일생일대의 기회가 그렇게 사라져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집 바로 위층에 한 부부가 이사를 왔다. 그 부부에겐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이 개구쟁이 귀인이 아니었으면 건물주(?)가 되어 옥탑방을 서재로 쓰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의 귀인은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새벽에는 침대에서 내리뛰는 묘기까지 부리느라 쿵! 쿵! 거렸다.

처음에는 정중히 부탁을 했지만 부탁이 거듭되자 서로 짜증이 났다.

옆에서 굿을 해도 잠을 자던 남편마저 참을 수 없었는지 위층 남편과 큰소리가 오갔다.


그 무렵 나는 아이들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서 영어 학원을 알아봤지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가르치는 게 낫겠다 싶을 때 동갑내기 딸을 둔 엄마가 제안을 했다.


"아이들을 모아 줄 테니 (싸게) 영어 좀 가르쳐줘 봐"


노무사로 다시 일하기 싫어서 차일피일 미룬 게 몇 년째였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애들 학교 학부모 원어민 교실에서 만 원짜리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를 전공했지만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게 늘 창피했었다. 아이들 원비라도 벌 요량으로 과외를 시작했다.


하지만 위층에 귀인이 뛰기 시작하면서 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평소에 불면증이 있는 데다 새로 시작한 일과 층간소음 스트레스로 신경이 곤두섰다. 잠을 거의 못 자는 날이 한 달 가까이 돼가자 보다 못한 남편이 말했다.

"그때 말한 그 집 아직 안 팔렸대?"

"나도 모르지. 갑자기 왜?

"한번 알아봐. 아직 안 팔렸으면 사버리자."


부동산을 방문한 이후 거의 두 달이 다 되어 갈 때였다.

다행히 '나의 집'은 그때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주인이 내가 갔던 부동산에만 매물로 내놓고 중개사는 복비를 양쪽에서 먹을 욕심에 혼자만 갖고 있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집을 둘러보던 때가 아직도 억난다. 1층에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서점이 있었고 2층과 3층은 각각 원룸 하나와 투룸 두 개가 있었다. 마지막 4층은 주인세대로 그 당시엔 부동산 사장님의 지인이 전세로 살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부동산 사장님이 여러 차례 전세로 살고 있는 지인에게 매물로 나온 집을 살 것을 권했다고 했다. 하지만 세입자 지인은 여름엔 덥고 겨울이면 춥다고 완강히 거절했다고 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층 주인세대는 세입자 말 그대로 낡고 초라했다. 겨울이면 추워 못 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첫눈에 집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옥탑방으로 연결된 계단이 거실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세대들은 옥상을 올라갈 수 없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이 마음이 바뀌지나 않을까 싶어 계약을 서둘렀다. 계약금도 일부러 제시한 금액보다 더 많이 지불하겠다고 했다.

계약서를 쓰는 날 중소기업 사장이라던 매도인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덕담을 남겼다.


" 아마 집값이 두 배는 오를 거요. 이상하게도 내가 팔기만 하면 그렇게 오른단 말이야 하하"


신기하게도 계약서를 쓴 그날부터 아이가 뛰는 걸 멈췄다.

거짓말 같은가?

맞다. 거짓말이다.

아이가 뛰는 걸 멈춘 게 아니라 아이 아빠가 최상급 매트를 온 집안에 깔았다고 했다. 매트를 조금만 더 일찍 깔았다면 어쩌면 우린 아직도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17년이나 지났고 사장님의 덕담은 현실이 되었다.


운(運)이란 그물은 이토록 치밀하다.


만약 내가 노무사로 계속 일했다면, 우리는 전세로 주었던 아파트로 다시 돌아 올일이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학원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지 않았다면, 난 언감생심 월세를 받는 건물주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위층에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꼬마 귀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남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우리 집은 남의 집이 됐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집을 계약하던 날 까맣게 잊고 지내던 몇 년 전 꿈이 생각났었다


꿈에서는 갑자기 시댁 식구들이 몰려와 거실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의 친인척까지 몰려와 거실에서 서성 거린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시어머니는 안방에 가보자고 한다. 나는 의아해하며 안방문을 열다가 깜짝 놀란다.

반짝이는 하얀 털을 가진 새끼 돼지들이 방안 가득 돌아다니고 있다. 강아지처럼 귀여운 새끼 돼지들이 몇 마리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꿈을 꿀 당시는 남편 옥바라지를 할 때였다.

설마하니 몇 년전에 꾼 돼지 꿈이 이제야 영험함을 드러낸건가?

 

안방의 새끼 돼지 덕분인지 전생에 쌓은 공덕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늘이 도운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문서가 재성을 고와 강력하게 합(合)하고 들어오는 그 해를 놓쳤다면 아마 옥탑방 서재는 내 평생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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