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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Oct 28. 2024

12. 내면의 힘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

처음 명리학을 배울 때는 육십갑자를 외우고 생극제화(生剋制化)를 배운 다음 명리학의 꽃이라 불리는 십성(十星)을 외운다. 

십성이란 생극(生克) 관계를 따져 일간과 다른 글자와의 관계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일간을 生해주는 글자는 인성(印星), 일간을 극(克)하는 글자는 관성(官星), 일간이 克하는 글자는 재성(財星)으로 보는 식이다. 이러한 십성은 육친관계나 인간사(人間事)에도 적용한다. 예를 들어 일간을 생해주는 인성은 육친으로는 모친이나 윗사람, 상사등으로 보고, 일반적으로는 학문이나 문서로 본다. 


십성을 외웠으면 이제 삼합(三合)이나 방합(方合), 육합(六合)등을 외우고 육충(六冲)과 육파(六破)등을 외운다.

이 외에 역마살이니 도화살이니 하는 12 신살(神殺)과 글자의 생로병사를 나타내는 12 운성(運星)을 외운다. 공망을 외워 조상궁이 공망 맞았는지 자식궁이 공망 맞았는지를 보고 조상덕, 자식덕을 점친다. 이외에도 귀문살이니 백호살이니 하는 신살부터 귀인중의 으뜸이라는 천을귀인, 학당귀인, 문창귀인등을 외운다.


함께 배우던 어떤 이는 1년이 지나도록 육십갑자도 못 외워 코팅을 해 갖고 다니다 선생님께 핀잔을 듣기도 했다.

3개월쯤 되면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슬그머니 없어져 기초반이 끝날 때쯤엔 반 정도 남는다. 외워야 할게 끝도 없이 나오는 데다 문파마다 신살이나 공망 보는 법도 다르다. 그런데 운을 보는 건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팔자를 놓고 상팔자인지 고생길이 훤한 팔자인지를 볼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운을 적용해 본다. 

팔자에서 무기로 쓰는 글자를 찾고 그 글자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보며 길운과 흉운을 가늠한다. 대운이 길운이라면 일단은 호운(好運)으로 점치고 대운이 흉운이라면 세운을 더 유심히 살핀다.


듣기만 해도 머리 아픈 이 공부를 하느라 머리가 다 하얗게 샜다. 그럼에도 손을 놓을 수 없는 건 운이 부리는 마술을 직접 겪었기 때문일까? 


' 돈은 원 없이 벌었겠소. 나무 깎는 취미가 있으신가?'

언젠가는 나도 선생님처럼 폼을 잡으며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서일까?


이렇게 정성으로 공부를 했어도 팔자의 운을 점치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건 30년 넘도록 공부하신 선생님도 마찬가지라 하신다. 팔자를 볼 때와는 달리 運을 적용하는 건 너무나 복잡한 데다 정해진 틀도 없다. 이때부터 진짜 본게임이 시작되고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중간에 때려치우고 만다. 그러니 웬만큼 눈 밝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팔자의 運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눈 밝은 역술인이 아니어도 자신이 서 있는 길이  吉인지 凶인지 정도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마음 상태와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 집안이나 주변 환경을 살피면 된다.


평상시에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되었는가? 미친년 널뛰듯 내 마음 나도 몰라인가?

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한가? 만사가 귀찮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는가?

남에게 말을 부드럽고 예쁘게 하는가?  필터 없이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대는가?

다른 사람을 친절하고 예의 있게 대하는가?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 믿고 언성부터 높이는가?

집안이 정리되어 깔끔하고 온기가 도는가? 냉기 도는 집안에 풀어보지도 않은 택배상자가 나뒹굴고 있는가?


만약 후자라면 굳이 운을 살피지 않아도 흉운(凶運) 한가운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運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생체내에 보이지 않는 氣라는 수신기가 있어 하늘과 대지의 기운에 감응(感應)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비 오는 날 기분이 괜스레 처지며 햇살이 가득한 봄날엔 이유 없이 가슴이 설레겠는가? 푸르른 녹음이 우건진 숲 속에 가면 어째서 마음이 이완되어 평온함을 느끼겠는가? 세상에 떠밀려 절벽 끝에 섰을 때, 곧 죽을 것처럼 숨이 막힐 때 왜 우리는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한 도시가 아니라 바다를 찾고 산을 찾는가? 



눈 밝은 역술인을 만나 팔자를 알고 운을 다면 흉운(凶運)을 비껴갈 수 있을까?

아마도 조금은 덜 출렁거릴지도 모른다. 움직여야 할 때인지 숨 고르기로 마음 수양에 힘써야 할 때인지는 알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凶運 한가운데 있다면 눈 밝은 역술인을 찾는 일보다 당신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내면의 힘이 있어야만 태풍 같은 운이 흔들어대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단한 내면은 나무의 튼튼한 뿌리와 같다.

땅속에 깊고 튼튼한 뿌리를 내린 나무가 비바람 몰아치는 태풍을 견뎌내 듯 단단한 내면은 어떤 흉운도 버텨낼 수 있는 당신의 뿌리가 된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죽일 듯이 달려들던 흉운을 건너면 생일날 깜짝 선물 같은 運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당신을 흔들어 대는 태풍이 무엇이든 버텨내라. 버티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태풍이 불 때 섣불리 길을 나섰다가는 거센 바람에 휩쓸려 원치 않는 방향으로 떠밀려 갈 수 있다. 길을 나서더라도 태풍이 지나가고 바람이 잦아든 다음에 나서야 앞이 보이는 법이다.

조급해할 것도 없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쳐다보면 자신만 뒤처진 것 같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당신 뒤통수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속도와 저마다의 계절을 가지고 있다. 

봄에 피는 벚꽃이 있는 가하면 겨울에 피는 동백꽃도 있다. 벼는 뜨거운 여름을 견뎌야 땀방울 같은 알맹이를 맺으며 가을이 되어서야 제 역할을 끝내고 사라진다. 만물이 얼어붙는 동지섣달에도 땅속에선 陽이 웅크리고 앉아 기운을 떨칠 기회를 노린다.

사계절이 순환하 듯 저마다의 運도 순환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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