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영어 공부하던 엄마들의 소개로 아이들이 자연스레 늘었다. 막상 해보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소질도 있었다. 그대로 몇 년을 더 했다면 금방이라도 고액 과외 선생이 될 판이었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숙제 타임이 돌아왔다
직장을 그만둔 남편이 또 돈 사고를 쳤다. 선물 거래로 큰돈을 벌었던 경험은 몇 푼의 월급을 우습게 만드는 독이 됐다. 입으로는 학원을 차린다면서 하는 일이라곤 그래프가 현란한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는 게 다였다.
직장을 다니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건 재능 낭비라고 생각했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전적을 잊지 못한 남편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한 푼 두 푼 모아 놓은 피 같은 내 총알을 한방에 날렸다.
약골 체력인 데다 수업 타임이 늘어나니 점점 힘에 부쳤다.
더군다나 수업을 하다가도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남자 셋이 내가 일을 하든 안 하든 똑같이 먹으려 들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간간히 문제 되던 불면증이 심해졌다. 약물 부작용의 위험성을 잘 몰랐던 난 전처럼 수면제를 먹었다.
대개 이 삼일이면 약을 안 먹고도 잘 수 있었는데 그땐 통하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불안해진 나는 약을 끊었다 먹었다를 반복했다.
어느 날인가 새벽잠에서 깨면서부터 속이 울렁댔다. 밥을 보면 임산부 입덧하듯 헛구역질이 났다.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못 자는 날이 늘었다. 기력이 너무 떨어지니 이명 같은 게 생겼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확성기를 달고 달려드는 것처럼 웅웅 거렸다. 백 미터 달리기를 앞둔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배가 팔딱거렸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막혀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온갖 검사를 했지만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우연히 남편 친척이 운영하는 내과에서 갑상선 초음파를 했다. 암이 의심된다며 대학 병원 아는 의사를 소개해줬다. 그때는 갑상선 암이 발견되면 아무리 초기여도 수술부터 하던 때였다. 아는 의사를 둔 빽으로 수술 날짜가 빠르게 잡혔다. 갑상선 호르몬에 문제가 있어도 수면 장애가 생긴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았다. 암이 발견 돼 수술을 앞뒀는데도 무섭기보다는 잘 수 있단 생각에 다행이라 여겼다.
수술만 하면 생전 처음 겪고 있던 수면장애와 식이 장애까지 모든 것이 한방에 해결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수술 후엔 수면제를 먹고도 잠이 오지 않는 상태가 됐다. 나중엔 의사가 응급약이라고 준 오이씨 모양의 약까지도 소용이 없었다. 며칠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면 환영에 시달렸다. 잠깐이라도 잠든 때는 악몽에 시달렸다. 시커먼 그림자가 쫓아오는가 하면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기도 했다.
응급실에 실려갔다.
응급실 인턴은 진정제를 놓아주며 죽을 날 받아놓은 노인이나 맞는 약이라며 자주 맞으면 큰일 난다고 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는 날이 이어지자 죽어서라도 잠을 자고 싶었다.
애들 생각에 눈물이 났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작은아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미숙한 부모를 만난 죄로 온전한 자아 탐색의 시간인 사춘기를 건너뛰고 애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아이들이었다.
의사에겐 미안하지만 차라리 암 수술을 받다 죽었어야 했단 생각이 들었다. 자살로 죽은 엄마 보다야 암으로 죽은 엄마로 기억되는 게 아이들한테는 덜 아픈 일일테니. 이렇게 살다 끝내 아이들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멍을 남기는 건 아닌지 무서웠다.
애들을 생각하니 죽더라도 정신병으로 죽을 순 없단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이 달리기를 해서 나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생긴 두근거림을 뇌가 구분하지 못한다나 뭐래나. 어쨌든 달리기로 나았다니 나도 운동장을 뛰었다. 말이 뛴 거지 기다시피 걸어서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데 한 시간은 걸렸다.
그때까지도 신경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었다. 하얀 알약을 먹을 때마다 정상인이 아닌 것 같아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 하얀 약을 안 먹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젊은 한의사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네 달 치 한약을 지어왔다. 그 젊은 한의사는 하얀 약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신경 정신과 의사는 약을 함부로 끊으면 큰일 난다고 했다.
평생 하얀 약을 먹고살 순 없단 생각에 약을 몽땅변기에 버렸다. 혹시나 해서 오이씨 모양의 응급약은 남겨뒀지만 나중엔 그마저 버려버렸다.
나중에야 그 하얀 약이 졸피뎀이란 걸 알았다.
약을 끊은 후엔 그야말로 사투가 벌어졌다. 밤새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는 바람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유 없는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환한 햇살을 받고 뒷산을 걷다가도 튼튼한 나뭇가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목매는 상상을 했다. 내 머릿속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들어앉아 나를 조종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시 하얀 약을 먹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절벽 끝까지 내몰린 난 생명체의 본능을 믿어보기로 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 본능이 있으니 '숙주'가 잠을 못 자서 죽게 놔두진 않을 거란 믿음이었다. 내 안 어디에 그런 기특한 배짱이 숨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내 배짱이 통했는지 이 삼일에 한 번씩은 잠깐씩이라도 잠이 들었다 깼다 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약물의 도움 없이 뇌가 스스로 잠드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이유 없이 울어대던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잠깐이라도 잠이 들었을 때 느끼는 안도감 내지 고마움이랄까?
잠깐씩이라도 잠을 자게 되자 그때까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일들이 새삼 고맙고 소중하게 와닿았다.
때 되면 밥을 먹고 밤이면 잠을 자는 일, 평소라면 아무 감흥조차 없었을 일들도 새롭게 다가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첫걸음마를 뗀 아기라면 그때의 내 심정을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