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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Oct 30. 2024

14.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최악의 회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내 모든 걸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던 태풍을 간신히 견디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친정 엄마 전화가 잦아졌다. 대부분은 당신의 억울함에 대한 넋두리였다.

어릴 때 당신의 엄마가 어린 당신을 얼마나 혹사시켰는지, 어린 당신이 술고래 오빠들 시중을 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버지처럼 의지하려 했던 당신의 남편은 얼마나 무심했는지, 돈 먹는 하마가 된 당신의 아들은 당신의 노후를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억울한지..........

어느 날은 하염없이 울면서, 어느 날은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똑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하늘은 내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나에게 예전과는 달라진 엄마를 알아채고 돌아볼 여력이 있었다면, 만약 그때 나에게 그런 엄마로 인해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할 여력이 남았더라면, 자식 중 누구라도 사랑으로 그런 엄마 아버지를 감당했더라면, 그랬다면 우리 부모와 나는 불행한 가정의 행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얀 약을 끊은 지 1년이 다 돼가고 있었다.

겨우 정상인에 가깝게 잠을 잘 수 있던 어느 새벽에 남편 핸드폰이 울렸다.

작은 엄마였다. 순간 친정에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내 핸드폰이 무음이어서 남편에게 연락했던 것이다. 불길한 느낌에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에게 옷을 입으라며 허둥거렸다. 무슨 일인지 여러 번 물었지만 말을 흐렸다. 설마 설마 하며 친정집에 도착해 보니 집 앞에서 경찰차가 번뜩이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 사이로 작은 엄마가 보였다.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먼저 올라갔던 남편이 내려와 나를 안으며 흐느끼듯 중얼댔다. 놀라지 말라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남편은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나를 끌어 차로 데려갔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차 안에 앉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꿈인가 싶어 살을 꼬집어 봤다.

남편은 나를 안아주며 흐느껴 울었다. 그제서야 세상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자살이라며? 세상에 그렇게 착한 할아버지가 어쩌다 그랬대? 쯧쯧.."

"딸이라며? 근데 왜 저러고 있어?"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오면서 그제야 눈물이 났다.


아수라장 같은 장례식을 마치고 죄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죄인이 된 나는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웠다.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유서한장 남기지 않고 가버린 아버지가 시간이 지날수록 야속했다.

어느 새벽 남편은 나를 데리고 뒷산을 올랐다.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태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떠올랐다. 무심한 태양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맘껏 목놓아 울었다.


양처럼 순했던 아버지는 따뜻한 분이셨다. 30분이나 걸어야 하는 학교에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서있곤 하셨다. 심한 감기로 앓아누운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시던 그 따스한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새참으로 나온 과자와 사탕을 남겨와 언니 오빠 몰래 먹으라고 주시던 분.

유독 몸이 약했던 나를 위해 지게를 가마 삼아 막내딸을  태우고 다니던 분.


그런 아버지에게 도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했을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동네 아저씨들과 막걸리 한잔 하는 걸 낙으로 삼던 아버지를 끌고 엄마는 아들을 따라 도시로 나왔다. 자식을 앞세운 아픔을 말없이 감내하던 아버지에게 자연은 유일한 안식처였을지도 모른다. 친구도 하나 없는 곳에서 묵묵히 일만 하시던 아버지는 점점 말수가 없어지셨다.

아들로 인해 오히려 노후가 망가진 엄마의 괴팍함으로 아버지는 시름시름 지쳐갔으리라.


그 새벽 산을 내려오며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떤 죽음이어야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뼈아픈 상처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내 아버지와 같은 죽음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남은 자들 가슴에 평생 치울 수 없는 돌덩이를 던져놓는 무책임한 죽음은 아니어야 하지 않겠나?


선생님은 인생은 단막극이 아니라 연속극이라고 하셨다. 인간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할 뿐 전생의 인연이 얽혀 이 生의 인연이 된 거라고 하셨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달콤해도 바르게 살아야 한다 하셨다.


슬픔에 온몸이 젖더라도 다시 마른 옷을 갈아입고 햇살 속으로 걸어간다.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아침 햇살을 맞고 하루 일과를 묵묵히 해낸다.

生의 비참함에 목이 메어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불행을 견디며 제 命을 다하는 날까지 살아내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 生을 다하는 그날은 하늘의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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