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의 대자연이 설계한 가장 완벽한 산책
차트웰의 정겨움을 뒤로하고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국경을 넘어 도착한 '보드난트 가든(Bodnant Garden)'은 시작부터 압도적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건물로 들어가는 길에 한여름의 갈증을 식혀줄 작은 분수를 감싸 안은 정원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가든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는 쉴세 없이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택 앞에 서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것은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가꿔진 테라스 정원과 거대한 연못이었습니다.
잔잔한 연못 수면 위로 구름이 흐르고, 그 주변을 감싼 화려한 꽃들은 마치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같았습니다.
테라스에 서서 연못과 주변의 수많은 꽃들과 저택 뒤로 바라보이는 스노도니아 산맥을 바라보는데, "아, 이게 바로 웨일스의 품격이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이 단정한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반전'에 있었습니다.
저택 앞의 우아한 풍경을 충분히 즐긴 뒤, 우리는 정원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 본격적인 계곡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위쪽이 인간의 손길로 빚은 예술 작품이라면, 아래쪽 계곡인 '더 델(The Dell)'은 대자연이 제멋대로 그려낸 거대한 벽화 같았습니다.
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공기의 온도와 밀도가 달라졌습니다. 사람 키를 몇 배나 훌쩍 넘는 거대한 삼나무와 레드우드들이 하늘을 가리고, 발밑으로는 8월의 싱그러운 이끼와 수풀이 가득했습니다. 잘 닦인 정원 산책로가 어느새 거친 숲길로 변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짜릿한 탐험이었습니다.
계곡 깊숙이 들어서자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물길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수국(Hydrangea) 무리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8월의 보드난트는 수국의 세상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보드난트 가든의 백미는 '봄날의 노란 꽃비'를 말하지만, 저에게는 계곡의 서늘한 물안개 속에서 피어난 이 푸른 수국들의 생명력이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보라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수국 파도가 짙은 초록색 숲과 어우러진 풍경은, 의사로서 차가운 모니터만 보던 제 눈을 정화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도 자연의 색채만으로 이렇게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겸손해졌습니다.
계곡 바닥까지 내려와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다리는 조금 뻐근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상쾌했습니다. 높은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던 풍경도 좋았지만, 숲의 심장부까지 걸어 들어와 나무의 숨소리를 직접 듣는 트레킹은 저에게 단순한 산책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보드난트의 계곡은 "잠시 내려놓고 숲의 속도로 걸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화려한 꽃이 있든 없든, 정원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제 계절의 몫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 든든한 생명력을 수혈받은 덕분에, 숲을 빠져나오는 제 발걸음에는 다시 자연이 주는 행복을 느끼며 일상을 살아갈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골든 타임: 라버넘 아치(Laburnum Arch)의 황금빛 터널을 보려면 5월 말 ~ 6월 초가 절정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그냥 초록 터널만 보게 되니 여행 일정을 짤 때 꼭 체크하세요.
8월의 수국: 8월 방문객이라면 계곡 하류 쪽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웅장한 수국 군락이 자아내는 푸른 신비로움은 보드난트의 숨은 백미입니다.
편한 신발 필수: 이곳은 평지 정원이 아니라 산비탈과 계곡을 오르내리는 코스입니다. 구두나 샌들보다는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 '더 델(The Dell)' 계곡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입체적인 코스: 저택 앞 테라스(Top Garden)에서 시작해 계곡(The Dell)까지 이어지는 고도 차이를 즐기세요. 정원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트레킹화 권장: 생각보다 경사가 있고 길이 길기 때문에 편한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신어야 계곡 깊숙한 곳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피크닉 명당: 계곡 아래쪽 물가에 돗자리를 펴고 샌드위치를 먹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웨일스의 웅장한 계곡과 황금빛 꽃비를 가슴에 담고, 다음 주는 국경을 넘어 다시 잉글랜드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거친 야생을 지나 만나는 가장 안락하고 평화로운 마을. 꿀색 돌집들이 엽서처럼 늘어선 바이버리(Bibury)와 사슴들이 뛰어노는 찰코트 파크(Charlecote Park)가 우리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