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완벽한 풍경 속의 옥에 티? 노란 차와 비

바이버리의 인간미와 찰코트의 빗소리

by 명준표 Jun Pyo Myong

꿀색(Honey-colored) 마을의 '노란 차' 사건

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지난편 힐 탑의 호수와 언덕을 넘어, 영국 중부의 '코츠월드(Cotswolds)'를 안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영국에 간지 얼마 안되어, 아직 차가 없던 시절 프라이빗 가이드님과 함께 옥스포드와 함께 방문한 곳이지요. 이곳은 런던에서 멀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한번쯤은 다녀왔을 곳입니다.

코츠월드는 영국인들이 "영국의 영혼"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바이버리(Bibury)'는 19세기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극찬했던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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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꿀색(Honey-colored)' 돌집들이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치 중세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완벽한 풍경.

그런데 이 완벽한 풍경 속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노란 차(Yellow Car)' 이야기입니다. 과거 이곳의 상징인 '아링턴 로우' 앞에 아주 샛노란 경차 한 대가 늘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은 "중세 풍경에 웬 튀는 차냐"며 불평했죠. 급기야 누군가 차를 훼손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지만,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전국의 노란 차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여기는 세트장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다!"라며 할아버지를 응원하는 퍼레이드를 벌인 것입니다.

완벽하게 박제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묻어있는 곳. 그 이야기를 알고 보니 꿀색 돌집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멈춘 골목, 아링턴 로우

그 유명한 '아링턴 로우(Arlington Row)'의 좁은 골목을 걸었습니다. 14세기에 지어진 양털 창고가 17세기에 직조공들의 집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곳입니다.

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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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삐뚤빼뚤한 지붕 선, 낮은 굴뚝, 그리고 집 앞을 흐르는 맑은 콜른 강(River Coln). 강물 위에는 오리 가족이 유유자적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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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여기 오리가 사람을 안 무서워해요!" 노란 차가 주차되어 있던 그 자리를 지나며 생각했습니다. 아링턴 로우에는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꼭 서울의 한옥마을의 관광지 처럼 삶의 곁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요.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 오래된 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요. 엽서 속 풍경이 아닌, 사람 냄새나는 풍경이라 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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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렌체스터 (Cirencester) 바이버리(Bibury)

붉은 벽돌과 꽈배기 굴뚝, 찰코트 파크


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20200617_123512.jpg 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코츠월드의 여러 곳들을 함께 돌면서, 바이버리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푹 젖어 있다가,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찰코트 파크(Charlecote Park)'를 다다를 수 있습니다. 영지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습니다 . 바이버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정적인 평화'였다면, 찰코트는 붉은 벽돌 저택과 드넓은 영지 위로 생명이 박동하는 '동적인 활기'의 공간이었습니다. 저택 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끝없이 펼쳐진 초록색 잔디와 저택으로 가는 길이 보였습니다. 오늘은 저택안이 행사로 문을 닫은 지라, 우린, 쇠창살 안으로 저택을 바라봐야했고, 주변을 돌면서 저택과 영지를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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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이곳은 튜더 왕조 시대부터 루시(Lucy) 가문이 살아온 대저택입니다. 바이버리가 소박한 서민의 집이라면, 이곳은 압도적인 귀족의 영지(Estate)였죠. 가장 인상적인 건 지붕 위에 솟은 '굴뚝'들이었습니다. 마치 붉은 사탕을 꼬아놓은 것처럼 정교하게 비틀어진 꽈배기 모양의 굴뚝(Twisted Chimneys)들!

20200617_124817.jpg 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건물 뒤편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숨결이 서린 에이본 강(River Avon)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실제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불과 15분 정도만 차로 가면 도착하죠) 자로 잰 듯 반듯한 정원과 웅장한 붉은 저택. 우리는 "와, 진짜 영국 귀족이 사는 곳 같네!" 하며 감탄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늘은 멀쩡했습니다.


커다란 나무 아래, 비를 피하는 사슴들

찰코트 파크는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절 사슴을 훔치다 걸렸다는 전설이 내려올 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앨리자베스 시대의 웅장한 저택도 멋지지만, 이곳의 진짜 주인공은 담장도 없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사슴들입니다. "이제 사슴 보러 가자!" 잘 가꿔진 정원을 지나 야생의 사슴 공원(Deer Park)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거짓말처럼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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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순식간에 쏟아지는 소나기. 하지만 우리는 찡그리는 대신 한손에 우산을 들고 보물찾기를 시작했습니다. "사슴들도 비 오면 어딘가 숨었을 거야!" 그리고 잠시 후,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수백 년 된 거대한 떡갈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숨을 죽였습니다. "찾았다!"

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그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수십 마리의 사슴 떼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초원 한가운데, 마치 거대한 우산처럼 펼쳐진 나무 밑에서 평온하게 쉬고 있는 사슴들의 눈망울.

비가 오지 않았다면 뿔뿔이 흩어졌을 녀석들이, 비 덕분에 한자리에 모여 가족회의라도 하는 듯했습니다.

영국 워윅(Warwick), 찰코트 파크 (Charlecote Park)

"와! 진짜 멋지다! 비 맞으면서 찾길 정말 잘했어!"

빗물 맺힌 아이들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제가 밝아진 목소리로 묻자, 아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바이버리에서 얻은 '평온'이 찰코트의 빗속에서 만난 사슴 덕분에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빗물에 젖어 더 진해진 붉은 벽돌 저택과 초록색 잔디, 그리고 나무 아래의 사슴들. 궂은 날씨가 오히려 잊지 못할 한 폭의 명화를 선물해 준 날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위로받기 위해 헤매는 지친 여행자가 아니었습니다. 빗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탐험가가 되었습니다.


Dr. Myong's Travel Tip: 바이버리 & 찰코트

바이버리의 노란 차: 지금은 그 유명한 노란 차(Peter Maddox 할아버지의 차)가 없지만, 그 자리는 여전히 사진 명소입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관람해 주세요.

코츠월드: 바이버리는 코츠월드의 작은 마을입니다. 코츠월드의 여러 마을드을 순서대로 돌아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입니다.

찰코트 건축: 지붕을 꼭 올려다보세요. '비틀어진 굴뚝'은 튜더 양식의 백미입니다. 붉은 벽돌은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 사진이 훨씬 더 운치 있게 나옵니다.

사슴 찾기: 비가 오면 사슴들은 100% 확률로 큰 나무 밑에 모여 있습니다. 초원에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나무 아래를 찾아보세요.


"빗속의 찰코트에서 선물처럼 만난 사슴의 눈망울을 가슴에 담고, 이제 우리는 다시 거대한 자연의 거울 앞으로 향합니다.

바람이 멈추면 호수는 거울이 되고, 나무들은 물 위로 데칼코마니를 그려내는 곳. 빗물에 씻겨 더욱 투명해진 우리 가족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안식처, '셰필드 파크(Sheffield Park and Garden)'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영국 서식스(Sussex) 셰필드 파크(Sheffield Park and 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