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수집가가 만든 가장 건축적인 정원
셰필드 파크의 거울같은 호수의 모습을 뒤로하고 소개해드릴 곳은, 코츠월드 북부의 '히드코트 매너 가든(Hidcote Manor Garden)'입니다. 이곳은 영국 정원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구조미'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압도된 것은 꽃이 아니라 '벽'이었습니다. 벽돌이 아닌, 살아있는 주목나무(Yew)를 칼로 벤 듯 반듯하게 깎아 만든 '초록색 생울타리(Hedge)'.
이것은 단순히 꽃을 심은 정원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로 벽을 세우고, 하늘을 지붕 삼아 지은 '거대한 초록색 건축물'이었습니다.
초록담벼락을 따라가다보면 갑자기 조용한 공간이 나타납니다. 이 공간을 전부 가득체운 주인공은 사진으로 담기 힘들 정도로 넓은 분수(fountain)입니다. 오롯히 우리 가족만 있었던 그날 적막함과, 초록색의 벽속에서 안락한 안온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보다는 인간의 의지와 계산이 완벽하게 들어간, 긴장감마저 감도는 미로. 우리는 그 치밀한 설계도가 그려진 초록색 미로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미로를 걷다 보면 시각적인 충격을 받게 됩니다. 바로 히드코트의 상징인 '레드 보더(Red Border)'입니다.
시싱허스트가 '화이트 가든'을 통해 고요한 치유를 노래했다면, 히드코트는 정반대입니다. 이곳은 온통 '붉은색'입니다. 붉은 칸나, 다알리아, 샐비어가 불타오르듯 피어있습니다.
초록색 벽 안에 가득 찬 붉은 에너지. "와, 여기는 진짜 살아있네!" 그 강렬한 색채 대비는 보는 사람의 심장 박동수까지 올리는 듯했습니다. 시싱허스트가 차분한 명상의 시간이었다면, 히드코트는 열정적인 탱고 춤을 보는 듯한 역동성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독창적인 정원을 만든 사람은 미국인 '로렌스 존스턴(Lawrence Johnston)'입니다. 그는 책상물림이 아니라, 직접 전 세계를 누비며 희귀 식물을 찾아다닌 '식물 사냥꾼(Plant Hunter)'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 중국, 알프스... 그가 목숨 걸고 수집해 온 이국적인 식물들이 이 정원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드코트는 전형적인 영국 정원 같으면서도 어딘가 낯설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단순히 예쁜 꽃을 심은 게 아니라, 자신의 모험과 수집품을 전시해 놓은 거대한 '야외 박물관'. 식물 하나하나에 그의 모험담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풀 한 포기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날 단연코 최고의 공간은 알록달록한 작은 꽃밭정원이였습니다. 작은 꽃들은 주변의 초록울타리를 넘어 코티지와 어울려 가장 큰 기쁨을 전해줬습니다.
이곳의 상징물인 롱 워크(Long Walk)는 당시 출입이 금지되어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저기 돌담넘어 산책길에서는 마법 같은 반전이 일어납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자마자 오솔길 넘어 나무사이를 걸을 수 있는 길이 나타난 것입니다.
양쪽으로 곧게 쭈욱 뻐든 나무길을 바라보면서, The Stilt Garden은 샹젤리에 거리를 옮겨 심었고, 저 큰 나무 사잇길은 Kew garden의 숲길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오솔길을 걷다 나온 길 옆의 나뭇길은 잠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새로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은 이 곳에서 연신 사진 셔터를 더 많이 누르게 합니다.
길의 끝네서, 우리는 작은 다리를 맞이합니다. 숲길을 걸었던 우리는 저 다리에 앉아 잠시 다리 밑을 내려다 봅니다. 자연을 인공적인 곳에 모아둔 곳에서 인공미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다소 답답함이 있었다면, 울타리 밖은 우리가 다리와 나무 그루터기에 잠시 앉아 지친 발 쉬어가는 자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설계자 로렌스 존스턴은 우리에게 이 짜릿한 '자유와 휴식'를 맛보게 해주려고 그토록 높은 벽을 세웠나 봅니다.
Dr. Myong's Garden Tip: 히드코트 매너 가든
관전 포인트: '시싱허스트의 화이트'와 '히드코트의 레드'를 비교해 보세요. 정반대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롱 워크(Long Walk): 이곳은 히드코트 최고의 포토존입니다. 길 끝에 서면 코츠월드의 드넓은 평야(Vale of Evesham)가 발아래 펼쳐집니다. 인생샷을 남기기에 완벽합니다.
자매 정원: 바로 길 건너편에 '키프츠게이트(Kiftsgate)'라는 또 다른 명품 정원이 있습니다. 체력이 남으신다면 두 곳을 비교해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미로 같은 초록색 방들이 건네는 아기자기한 마법을 뒤로하고, 다음 주는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듯한 압도적인 우아함 속으로 향합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이 금방이라도 계단을 내려올 것 같은 18세기의 대저택. 폐허가 될 뻔한 집을 지극정성으로 되살려낸 한 부부의 집념과, 황금빛 석조 건물이 뿜어내는 귀족적인 기품.
우리 가족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던 화려한 안식처, '바질던 파크(Basildon Park)'가 우리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