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킹 끝에 발견한 보물, 그리고 삶의 여유
나이맨스와 차트웰을 거쳐, 우리는 영국 북서부의 거친 대자연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를 소개하겠습니다.
웅장한 산맥과 깊은 호수가 끝없이 펼쳐진 이곳은 걷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웨일즈의 스노도니아 산과 함께 영국인들이 많이 찾는 자연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호수 주변으로 웅장한 언덕들이 많고 트레킹 코스로 유명합니다.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우리는 등산화로 갈아신고 신발끈을 튼튼히 묶고 산행길을 올랐습니다.
우리는 지도 한 장 들고 발길 닿는 대로 호수 주변을 하이킹하고 있었습니다. 힘들면 그 자리에 앉았고,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호수를 바라보면 힘듦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걷던 중, 작은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Hill Top (National Trust)'
"어? 여기 내셔널 트러스트가 있네?" 계획에 없던 우연한 만남이었습니다. 떡갈나무 잎 문양이 반가워 홀린 듯 좁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거대한 자연 속에 앙증맞게 숨어 있는 작은 농가.
바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친구,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이었습니다. 마치 보물찾기에서 1등 경품을 찾은 듯한 짜릿한 반가움이었습니다.
입구에 도착해보니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때문에 아쉽게도 실내 입장은 제한된 상태였습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실내공간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북적거리는 집 안 대신, 우리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가장 사랑했다는 '코티지 가든(Cottage Garden)'을 온전히 독차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정형화된 공원이 아니라, 꽃과 허브와 채소가 자유분방하게 뒤섞인 정원은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우리는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살랑이는 바람, 흙냄새, 그리고 따뜻한 홍차의 향기. 집 안을 구경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대신, 가만히 앉아 정원의 초록색 에너지를 눈에 담는 시간. 계획에 없던 이 '멈춤'이 하이킹으로 달궈진 몸을 기분 좋게 식혀주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맛이 아닐까요.
차를 마시며 정원을 둘러보니, 이곳이 왜 특별한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정원은 단순한 식물밭이 아니라, 그림책 <피터 래빗 이야기>의 실제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런던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 휴가를 왔던 호수 지방의 자연에 반해 책 인세로 이 집을 샀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양을 키우며 영감을 얻었죠.
정원 한쪽의 큼직한 상추와 루바브 잎을 보니, 금방이라도 파란 재킷을 입은 피터가 튀어나와 래디시를 아작아작 씹어먹을 것만 같았습니다.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텃밭이, 책 속의 '맥그리거 아저씨네 정원'과 오버랩되면서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동화 속 배경을 현실에서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오는 길, 힐 탑이 있는 '니어 소리(Near Sawrey)'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집마다 하얀색 처마 밑에 알록달록한 '행잉 바스켓(Hanging Basket, 걸이 화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영국 시골 마을 가게에서 볼 수 있는 낮은 돌담길 사이로 화사한 꽃장식들을 보며 걷는데,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워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웅장한 호수를 하이킹할 때 얻은 역동적인 에너지와, 작은 정원과 꽃바구니를 보며 느낀 소소한 행복. 거창한 깨달음 없이도, 그저 예쁜 것을 보고 "참 좋다"라고 말하며 걷는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힐 탑은 저에게 여행을 '숙제'가 아니라 '놀이'처럼 즐기는 법을 알려준 것 같습니다.
Dr. Myong's Travel Tip: 힐 탑(Hill Top)
우연의 즐거움: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여행하신다면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지 말고, 도로변의 'National Trust' 떡갈나무 마크를 주목하세요. 힐 탑처럼 뜻밖의 보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원의 디테일: 힐 탑 정원에는 피터 래빗이 숨었던 물조리개나 벤자민 바니가 걸었던 오솔길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숨은그림찾기하듯 찾아보세요.
마을 산책: 힐 탑을 보고 바로 차에 타지 마세요. 마을 집들의 예쁜 꽃바구니 장식과 돌담길을 따라 10분만 걸어도 호수 지방의 낭만을 듬뿍 느낄 수 있습니다.
"피터 래빗의 정원과 펍의 꽃바구니가 준 소박한 여유를 가슴에 담고, 다음 주는 국경을 넘어 '웨일스(Wales)'의 거친 대자연으로 달려갑니다.
8월의 수국이 만개한 계곡과 풍경. 웨일스의 자부심이자 꽃들의 교향곡, '보드난트 가든(Bodnant Garden)'이 우리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