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과 다르게 선출된 회장의 직무집행정지와 12억의 금액 반환까지
자신을 문중의 총무라고 소개하신 의뢰인은 수십 번을 고민하다가 저를 찾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재산 소송을 다루는 곳은 많은데 문중회장직무집행정지가 주가 되는 곳은 없었다면서 저 오대호의 글을 보고 여기까지 오셨다고 했지요.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며 더욱 자세한 사안과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달라 부탁드렸습니다.
그러자 의뢰인께서는 무거운 한숨을 쉬시고는 이렇게 입을 떼기 시작하셨지요.
"아마도 시작은 그 인간이 당선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겁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회장 선출 과정 자체가 조금 막무가내였거든요."
의뢰인의 말씀을 다 듣고 종합한 사실 관계는 이렇습니다.
문중 회장으로 선출된 A씨(이하 피고)의 선거 당일 분명 참석해야만 하는 핵심 인원들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과반수 동의 하에 결정이 이뤄졌고
당선 이후로부터 임시 회의를 여러 차례 개최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문중의 토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문중 서류를 정리하던 중 약 12억에 달하는 금액이 회장의 개인 재산으로 잡혀있는 것을 확인하여서
회장의 불법적인 토지매매 및 재산 증식을 막기 위해 문중회장직무집행정지를 주장하며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실 관계를 듣고 난 뒤 저는 다음과 같은 쟁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 문중의 규약에 따른 회장 선출의 방식은 어떻게 되는가?
2. 선출 이후 임시회의 개최로 토지 매매를 하고 이것을 개인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가?
이 두가지를 의문점으로 남겨두고 저는 문중의 규약과 회장 선출 당시에 적힌 회의록, 토지매매계약서와 소유권이전등기서류를 확보하였고 이를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1. 문중 회장 선출의 절차적 하자
의뢰인께서 말씀하신대로 회장 선출을 위해 열리는 회의에는 반드시 참석해야하는 핵심 인사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확보한 문중의 규약에 따르면 '신임 회장을 선출함에 있어서는 직전 회장, 청렴인사장, 이전 직무의 부대표, 문중대변인이 반드시 참석한 상태로 진행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문중 공식 회의록에 등록된 당시 참석자 명단을 살펴보면 규정대로 전부 포함되어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정작 현장에 두었던 참석자 명단에는 청렴인사장과 문중대변인, 이전 직무 부대표는 이름이 빠져있었습니다.
직전 회장의 이름은 참석자 명단에 있었지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석자 명단 옆에 출석란에 성함이 기재된 것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말인 즉, 처음부터 핵심인사가 없는 상태에서 신임 회장의 결정이 이뤄진 것이며 이에 대한 증거를 조작하여 당선되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신임회장 선출에 절차적 하자가 있으므로 당선된 피고는 회장의 자격이 없는 무자격자이며 동시에 문중을 대표하는 회장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였습니다.
2. 임시 회의로 문중 재산 처분한 점
문중에서 회장 선출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재산 처분과 관련된 것인데요.
문중에서는 오랫동안 토지를 관리하고 유지해오는 집단이기 때문에 토지 하나를 매매하기 위해서는 정식 총회를 개최하여 다수결의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합니다.
이것 또한 관련 규정이 존재하고 명백히 기록되어 있지요.
하지만 문중 회장은 당선된 이후 대표자라는 명분을 가지고 임시 회의를 개최했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 몰래 토지를 제3자에게 매매하고
본인이 제3자에게서 다시 매매하는 방식을 통해 총 12억 원의 토지 매매가를 편취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문중 토지의 주소와 일치하는 개인 소유의 토지 소유권이전등기를 제출하기도 했지요.
따라서 저는 종합적으로 재판부에게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당장 회장 당선을 결정했던 총회결의를 무효화할 수 없다면 문중회장직무집행정지를 통해 더이상의 추가적인 재산 손해가 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이미 회장은 문중의 토지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매매하여 12억이라는 큰 돈을 가지게 되었으니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내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원고가 주장하는 문중회장직무집행정지에 관한 주장과 근거가 명백하기 때문에 해당 판결 이후로 회장의 문중에 대한 직무를 정지할 뿐 아니라 불법적인 방법으로 편취한 재산 12억원을 다시 문중에게로 반환한다.
증거를 확보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판결을 듣고 나서 얼굴이 환해지는 의뢰인을 보니 저 또한 그간의 노고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뢰인은 판결 이후 재판장을 나서다 갑자기 멈춰서서는 저에게 크게 굽혀 감사인사를 하시더군요.
이러지 마시라며 손을 잡아드리니 의뢰인께서는 "변호사님 덕분에 제 마음의 짐도 벗고 제 조상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연신 손을 두드려주셨습니다.
같은 조상을 오랫동안 모신다는 것에서 공통점을 지닌 그들은 세상이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같이 변화해야 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경제적인 면을 보충해야 전통을 지킬 수 있을테니 말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지난 세월 동안의 전통이 모두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혹여, 지금 나의 문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이번 일지를 통해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또 다른 사례가 생각나면 오늘처럼 이렇게 가져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