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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버겁다.

설날

by 깨리

혼자일 때 명절과 결혼 후 명절은 180도 다르다.

결혼 전 명절은 진정한 쉬는 날이었다. 아무런 간섭 없이 내 맘대로 친구들과 만나 술 먹고 수다 떨고 쇼핑하고 남자 친구랑 영화 보고 맛난 것 사 먹고 마음의 짐 없이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결혼 후 명절은 계획된 전쟁이다. 전쟁 발발 전부터 계획에 돌입한다. 언제 시장을 보고 뭘 만들지를 정하고 시댁과 친정에 미리 연락해서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한다. 늘 계획대로 이루어지진 않아서 A 작전 B 작전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전쟁 전부터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몸이 먼저 명절임을 알아차리고 필사적으로 거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준비 단계에 돌입한다, 전쟁에서 무기를 준비하듯 꼼꼼히 메뉴와 재료를 마트와 시장에서 구입해서 냉장고에 넣고 전쟁 때 전투복을 준비하듯 명절에 입을 의복을 준비한다. 여기서도 시댁에 갈 때 옷과 친정에 갈 때 옷을 따로 준비한다.


남편과 애들 옷은 보기 좋고 있어 보이는 의복을 똑같이 입으면 되지만 나는 시댁 갈 때는 평범하고 소소하게 친정 갈 때는 있어 보이고 화려하게 입고 간다. 이유는 시댁에서 내가 있어 보이게 입으면 낭비한다고 한 소리 듣는다. 친정은 소소하게 입으면 내가 힘든 일 있는지 걱정하신다.

그래서 시댁과 친정 갈 때 옷이 다른 거다.


신경 쓰는 게 너무 많아 힘들다. 언제까지 해야 할지 의문이다. 명절 전날 시댁 가서 하루 종일 음식하고 집에 와서 자고 당일날 일찍 가서 차례 지내고 점심 먹고 친정 가서 저녁 먹고 밤늦게 다시 우리 집으로 온다. 시댁은 가깝고 친정은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명절에는 3시간에서 4시간 걸린다. 남편은 운전하느라 힘들겠지만, 나는 막내며느리, 막내딸이라 양쪽에서 엉덩이를 땅에 붙이기 힘들다. 돌아서면 상 차리고 다과 준비와 설거지하고 잠깐 지나면 또 반복하고 끝이 없다. 나는 전과 나물 담당이라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때문에 음식이 더욱 싫어져 라면 국물만 생각난다.


일과 명절 둘 중 고르라면 일하는 게 더 편하다. 명절은 신경 쓸 것과 내가 해야 할 일이 가득하지만

일은 정해진 것만 해서 좋다. 전쟁이 끝났다고 끝이 아니다. 후유증이 남는다. 집에 와도 쉴 수가 없다. 우리 집 살림들이 남아서 내가 처리해 주길 기다린다. 그 일을 겨우 끝내면 밤이고 바로 출근이다. 명절은 쉼이 아니라 나에겐 정신과 체력을 과하게 써야 하는 큰 행사 같은 거다.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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