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의 부작용
맹세컨대, 내가 칭찬에 박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자마자, 가장 어려운 것이 칭찬하기였고, 그건 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잘하는 아이들에게 칭찬하기는 당연히 쉽다. 문제는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칭찬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선생님으로서 그걸 잘해야 한다.
내가 항상 칭찬이 어려운 건 아니다. 친구들에게 난 꽤나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들었고, 나도 어떻게 해서든 긍정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다고 믿고 싶다. 어른을 대할 때는 그닥 문제가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착각일까?) 칭찬은 대체 뭘까?
칭찬稱讚
명사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
이라고 네이버 사전이 알려준다. 그렇다면 내가 아이들에게서 수업에서 일어나는 좋은 점이나 훌륭한 일을 찾지 못한다는 것일까?
칭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결과에 대한 칭찬, 노력에 대한 칭찬, 자질이나 재능에 대한 칭찬 등등. 결과에 대해서 칭찬하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라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학생들의 작업 결과를 칭찬했는데, 그러면 잘하는 애들만 칭찬을 받는 당연한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학생들이 작업을 하면서 노력한 것을 칭찬했다. 칭찬 실력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아이들은 학원을 자의로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양육자가 가라고 해서 다니는 경우도 많다는 거다. 그런 아이들이 학원에 와서 노력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또 칭찬할 거리가 없게 되는 거다.
얼마 전 그런 학생이 수업 중 여러 번 말한 부분을 계속 놓치며 작업을 했었다. 계속 그러면 어떡하냐고 하자 이 놈 자식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잖아요.'라는 말로 회피를 하는 바람에...
"지금 성공이한테 엄마가 너무 많아!"
라고 해버렸다. 진짜 욱하는 마음에 나온 말이지만, 다행히 센스는 있었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웃겨하면서 넘어가긴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내가 또 그랬구나 싶어서.
미술학원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원장이 아닌 강사로서, 난 한 수업당 해내야 하는 작업의 수준과 양이 있다. 이건 아이들의 성격과 실력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기준은 감으로 익힌 것이 있다는 거다. 아이들의 양육자는 아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작업을 했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결과물의 수준과 양으로 기관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 부분과 시행착오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설명을 보내지만, 직접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라 좁히는 것이 최대라고 생각한다.
이 점이 나의 칭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가 어떤 상태든 상관없이 완수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아이들에게 건네는 칭찬도 쿨쓰루하게 되는 거다. 내가 정한 기준에 아이들을 맞추기 위해 칭찬을 쥐어 짜내는, 결국 아이들 중심의 수업이 아닌 교사인 나 중심의 수업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건 내가 자주 미술교육/예술교육의 본질을 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무려 5년째 칭찬하기가 어렵다.
이건 결국 나를 내려놓아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학생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내 기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기준은 그럴 땐 꼭 필요하다. 기준이 가지는 의미를 부정하진 않는다. 기준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다른 부분에서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보내는 아이들이 시간이, 오로지 실력만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그건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우리의 마음에 쌓여가고, 쌓여간 그 기억들이 하나하나 살아있지는 못해도 뭉쳐져서 마음의 단단한 기반을 만든다. 기준을 충족하겠다고 마음의 기반을 만드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원장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 있다. 이곳에서 집중을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나 다른 학원에서는 잘할 거 같은지 생각해 보라고. 그 아이들은 그럼 하루종일 밖에서 자기를 지적하는 말만 들으며 지내게 되는 건데, 그렇다면 자기를 표현하는 이 공간에서만이라도 다른 언어를 접해야 하는 거 아닌지...
그래서 노력은 했지만, 아직까지도 난 나의 기준의 부작용을 달고 사는 거 같다. 마음과 머릿속에 스며든 잘못된 완벽주의, 잘못된 능력주의가 기준의 부작용을 만든다. 이것들을 씻어내고 내가 만든 기준을 충족하려는 마음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질문들
1. 주로 하는 칭찬은 어떤 칭찬인가요?
2. 받고 싶은 칭찬은 어떤 것인가요? 1번의 답과 같은지도 궁금해요!
3. 내가 들어보지 못한 칭찬은 뭐가 있을까요?
4. 스스로에게 해주는 칭찬은 얼마나 자주, 어떤 걸 해주나요?
5. 가장 하기 어려운 칭찬은 어떤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