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굳어지도록 묶여 있던 침상에 대한 직면

by 이정

죽으면 천 개의 바람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말은 진짜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의 침상에서 돌아가신 후에도 여러 사람의 모습에서 되돌아온다. 1940년대에 태어난 할머니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했는지, 그때의 할머니와 겹쳐지는 장면을 볼 때마다 '할머니도 이랬겠구나'하는 생각이 몰려든다.

탈시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삶이 귀하다’고 외치고, 누군가는 영상과 사진으로, 글로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다. 시설로 내몰려간 사람들이 예외도 없고, 영원할 것 같던 시설을 박차고 나와 한국 사회에서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말하는 장면들은 경이롭다. 20대의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언젠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압도당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 손녀가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를 침대째 밀고 나오는 장면이다. 손녀는 쇼핑카트에 할머니를 옮겨 태워 자신의 단칸방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커다란 달빛 아래 할머니의 침대를 몰래 끌고 손녀는 두려웠을까?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밤하늘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해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장면이라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드라마 속 영상이 아니라 마치 직접 본 것처럼 그곳에 뛰어들어 같이 침대를 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인공처럼 하고 싶었던 내 소망을 담아낸 것 같아 잊히지 않는다. 어둡고 좁은 단칸방에 할머니를 모셔온 주인공이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모른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농아인이었는데, 손녀에게 어떤 말을 가장 해주고 싶었을까 상상해 본다.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줘서 고맙다', '너에게 어려운 부담을 주어 미안하다' 였을까? 그 깊고 복잡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수어를 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나의 할머니는 침상에서 끝내 내 이름만 외치다 돌아가셨다. 홀로 누워만 계셨기 때문에 그 많던 말들도 잃어버렸다. 꼬집는 행동이 있다는 이유로 줄곧 침상에 묶여 계셨다. 집에서 살 때는 허리를 펴기 어려워 바로 눕기도 어려웠는데 요양병원에서는 늘 천장을 보며 묶여 있었다. 두 손은 묶은 붕대는 색이 바래졌고, 다리는 굽은 채 묶여있었다. 드라마 속 손녀가 아니었던 나는 왜 다리까지 묶여 있어야 했는지조차 묻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간식거리를 사가서 공동 간병인에게 할머니를 잘 부탁드리는 것이었다. 대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러면 먼 요양병원에 더 자주 가볼 수 있고, 병원에 잘 계실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히 할머니를 요양병원 밖으로 당장 모시고 나와서 함께 살아봐야겠다, 우리 사회가 그걸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런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꼬집는 행동이 있다고 했으므로 그렇게 믿고 다른 방법은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침대에 할머니를 묶어두어도 '이걸 풀어야 한다, 이건 인권침해다'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무지한 삶을 살았다.

일상을 열심히 살다 보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의 개인사라 생각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줄 몰랐다. 할머니의 생이 급작스럽게, 그렇게 묶인 모습으로 끝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무도 시설에서 묶여서 살다 사람이 죽을 수 있다, 가족도 못 보고 외롭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와 서로 이름만 애타게 부르다, 결국 전화로 돌아가신 사실을 알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책임지고 싶어 하는 이도, 책임질 수 있는 이도 없던 터라 할머니의 묶여있던 뼛가루마저도 어딘가에 흩뿌려졌다. 20대에 처음 맞닥뜨린 죽음이 너무나 황망했다. 평생 굽어있던 허리는 펴지고 묶여있던 다리는 펴지지 않았다는 말을 직면하기 어려웠다. 사회나 가족이 그런 죽음을 호상이라고 부를 때 세상이 무너졌다. 상식적인 세상의 사람이라면 할머니의 죽음 앞에 즐거울 수 없는 것인데, 호상이라며 웃는 사람들이 많은 장례식장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저 '호상이라며 웃는 사람'과는 같은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분노만 있었다. 하지만 탈시설운동 활동가로 살기 시작하고, 그때의 경험을 다시 직면할수록 슬픔은 흩어졌고 지금의 자랑스러운 내가 분명해졌다. 이제야 할머니가 묶여서 돌아가신 것이 한국 사회의 인권침해 구조라는 것,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치열하게 탈시설한 사람의 한 마디라도 기억하고 싶은 우리가 있는 세상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경험한다.

마흔이 되어 드라마 속에서 그때의 할머니와 나를 본다. 그때 우리에겐 없었던 '어른'들도 보게 된다. 주인공 손녀에게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때론 곁을 내어주는 '어른'들이다. 하지만 나의 할머니는 어떤 공공기관이나 시설, 종교기관에서도 그저 짠한 '사연'이고 '개인사'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시설에 보내지고 삶의 마지막을 시설에서 보내지만, 드라마 속 어른은 없다. 20년 전의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늙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시설에 가지 않고 살던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상상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이제는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같이 나와 살자고 외치는 탈시설당사자가 생겼다. 그런 삶이 가능하다고 함께 만들자고 외치는 이들이 뉴스에도 나오는 세상이다. 그 외침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일인지 새삼 느끼는 나날들을 살고 있다. 다만 사람들은 이들과 만나도 지나치기 쉽고, 그들의 절절한 외침들이 어디에서 왔고 당신과 어떻게 살아가자고 하는지 자세히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탈시설당사자와 활동을 하면서 되살아나는 할머니의 삶이 사라지지 않도록 직면하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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