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제주에서 일자리 구하기
9. 제주에서 먹고살기
수도권에서는 틀에 박힌 월급쟁이 생활밖에 모르다가 제주 와서는 나와는 생판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일 년간 거의 매일같이 트래킹 동호회에 나가서 걸으면서, 나처럼 육지에서 온 사람들도 만났고 제주 태생인 이들도 봤다. 아예 노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일의 종류나 근무 형태는 천차만별이었다.
하얀 셔츠를 맵시 있게 차려입은 청년의 정체는 스타트업 대표였다.
오전에는 타운하우스 거실에서 화상회의로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오후에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일에 집중했다.
일명 온라인 건물주로 불리는, 광고 수입만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도 있었다.
안식년을 받아 제주에 내려와서 미뤄둔 연구를 하는 대학교수도 있었고 건설 일용직이나 입주 청소 사업을 하는 분도 있었다. 화창한 날에만 페인트칠 일을 하는 분도 있었다.
제주는 특급 관광지이므로 리조트 호텔에서 정규직 또는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직장인도 많았다.
카지노 직원부터 소방기술자, 전기기술자까지 다양했다.
마당 있는 주택을 매입해서 한 달 살기 숙소로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수도권에 살면서 공실이 난 기간에만 제주에서 지낸다고 했다.
펜션을 직접 운영하거나 아르바이트로 펜션 청소 일을 하는 분도 있었다. 퇴실 후부터 입실 전까지 몇 시간만 일하면 5~6만 원 정도 일당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요리에는 젬병이지만 청소는 좀 하는 편이므로 솔깃해서 한번 해볼 만한 일 중 하나로 리스트업 해두었다.
코로나 시절에 국내 관광업계는 대부분 큰 타격을 받았지만 예외적으로 제주도는 유래 없는 호황을 누렸다.
해외여행이 막히자 관광객들이 제주도로 몰려들어서 마당 있고 아담하게 잘 꾸며진 독채 펜션은 비싼 숙박료에도 공실이 거의 안 났다고 했다.
방치되어 있던 농가 주택을 연세로 저렴하게 빌려서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고급 펜션으로 운영하던 분들이 큰 재미를 봤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펜션을 여러 채 늘려서 사업을 확장한 분은 코로나 끝나고 여행자들이 해외로 몰려가면서 불황기에 대출이자 폭탄까지 맞았다니, 하여튼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회사 다니기가 그렇게 끔찍하던 나도 어느 날부터 일하는 사람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갈 데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파트타임이라도 규칙적인 일이 있었으면 했다.
처음으로 시도한 일자리 구하기는 베이커리 일이었다.
막상 면접을 보러 갔더니 열기가 후끈한 오븐이 꽉 들어찬 밀폐된 작업장이 근무 공간이었다. 업무 환경을 직접 보는 순간 바로 '포기각'이 나왔다.
다음으로 알아본 일자리는 단골 카페의 테이블 매니저였다. 헌데 담당자는 난처한 얼굴로 젊은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남의 돈 먹기가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일자리는 포기하고 봉사 활동이나 알아봐야 하나 실망스러웠다.
한라산에 다녀와서 감기몸살을 앓느라 일주일간 쉬는 동안 예전처럼 게으른 독서가로 돌아간 나는 제주도 각지의 도서관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강좌도 열었는데 펜 드로잉, 여행작가 글쓰기, 독서치료, 브이로그 영상 제작 등등 참으로 다양한 수업이 있었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강사의 역량이 훌륭했고 강의의 질도 무척 높았다.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봤다. 제주 풍경 그리기 펜 드로잉은 쉽고 재미있었다.
흰머리가 단정한 펜드로잉 강사님은 8년 차 도민이었고 조천에서 화실 겸 소규모 드로잉 클래스를 운영한다고 했다. 중년에 시작한 그림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제주대학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쳤고 매일 그림 작업하는 일상은 제주살이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여행작가 강사님은 가이드북을 여섯 권이나 낸 작가였고 그중 몇 권은 수만 부나 팔린 스테디셀러였다.
제주도는 콘텐츠 생산이 왕성한 지역이지만 상주하는 창작자가 많지 않으므로 꾸준히 글을 쓰면 뜻하지 않게 좋은 기회가 온다는 팁도 알려주셨다.
제주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너무 심심해서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다고,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예전에 공모전 수상한 적도 있다고 떠들고 다녔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수요일마다 원고 마감을 하는 생활은 백수로 지내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긴장감과 활기를 주었다.
가끔은 쉬운 원고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좀 까다로웠다.
멀리까지 취재를 나가야 할 때도 있었고, 기껏 멀리 나갔는데도 갑자기 행사가 취소되거나 날씨 때문에 사진이 잘 안 나와서 허탕 치는 일도 있었다.
마감을 지키고 새로운 원고를 기획하면서 나는 좀 더 계획적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조금 더 집중하게 되기도 했다. 친구들 만나서 놀 때도 블로그 원고에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고 남의 글만 쓰는 게 아까워서 짧은 산문이라도 쓰게 되었다.
재택근무 일을 하게 되었다며 자랑하는 내가 너무 신나 보였는지 지인 하나가 그런 일은 안정적이지 못하다며 까칠한 지적을 했다.
나도 잘 안다. 언제 잘릴지 몰라서 불안하다.
프리랜서는 그 분야에서 탁월하게 일을 잘하거나 대체 불가능해야만 계속 일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찍은 사진은 구도나 화질이 엉망이고 할 말이 너무 많은 원고는 방대하고 산만하다.
담당 직원이 편집하다가 너무 짜증이 나서 차라리 직접 쓰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거나 품질이 보장된 다른 프리랜서로 갈아탈까 봐 불안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보장된 일자리는 없다.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트렌드도 계속 변한다.
나는 글 쓰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므로 블로그 일을 그만두면 장기여행을 떠나서 여행기를 쓸 수도 있고 제주에서 지내는 일상에 대해 꾸준히 에세이를 써서 브런치북으로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 찍는 기술이야 요즘엔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므로 배워둬서 나쁠 게 없다.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어째 내가 글 쓰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요즘에는 그냥 놀고 있는데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작가냐고 묻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아무튼, 요즘 나는 제주에서 글 쓰는 일로 먹고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