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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Nov 03. 2023

우리, 같이 살면 어떨까요?

프롤로그. 제주에서 친구들과 집 구하기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날벼락 같은 문자를 받았다.


너무나 심란해져서 마음을 추스리지도 못하고, 제주에서 알게 된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우는소리를 했다.


"나 어떡해... 집주인이 계약기간 끝나면 나가라고ㅜㅜㅜㅜ"     


아쉬운 소리나 하소연은 되도록 안 해야 하건만, 제주살이 2년차 서귀포 독채 오두막집에는 쌓인 정이 워낙 많았다.

친구들도 한번씩 내 오두막집에 놀러왔었고, 보자마자 너무 좋은 곳이라고 부러워했으므로 나의 충격과 비탄?을 바로 알아듣고 공감해주었다.




아티스트 단톡방이 금세 소란해졌다.

단톡방이래봤자 나, K, Y, 이렇게 셋 뿐이지만.


제주에서 독서모임으로 알게된 K와 Y는 ‘아침마다 일기를 쓰면서 내 안에 있는 아티스트를 깨우자’는 취지의 아티스트 소모임 단톡방으로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우울까지 나누는 사이였다.  

프리랜서인 나와 달리 긴 추석 연휴를 끝내고 사무실에서 몸을 비비꼬며 일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응답해왔다.


- 많이 심란하겠다... 이사 날짜 언제예요?

다정다감한 Y는 공감부터 해 주었다.


- 나가라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집으로 가라고 보내주는 거!     


 매사 활달하고 낙천적인 K는 어떤 일이나 긍정적인 시각으로 변화시켜서 상황을 바라봐주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던 나도 우연히 알게 된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제살이에 더욱 정을 붙이던  차였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잔디마당이 있는 독채 오두막집 계약이 연장 안 되는 건 무척 아쉬웠다. 내년에는 이곳을 떠나야한다니, 생각만해도 서운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지대가 조금 높은 중산간에 위치한 오두막집은 마당의 푸른 잔디밭과 자그마한 나무들 너머로 서귀포 바다가 보인다. 하늘 끝에 맞닿아 있는 푸르스름한 먼바다는 꿈결처럼 아득해 보여서 더욱 아련하고 아름답다.


가을로 접어들자 맑게 갠 날이 이어졌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언제나 갖가지 모양의 멋들어진 구름들이 시시때때로 모양이 바뀌면서 나그네처럼 훌훌 지나간다.


매일 아침 눈 뜨면, 나는 목조지붕 처마를 길게 덧대어 햇볕을 가린 오두막집 데크의 벤치에 앉아서 드립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쓴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석 달 후엔 집을 비워달라니! 이 무슨 날벼락일까. 여기서 대체, 왜, 어디로 가라고!!!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고 싶은 순간,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훅 들어왔다.


- 언니, 집 보러 다닐 때 같이 가도 될까요?

그래, 집 보러 다니는 거 피곤한데 Y랑 같이 가면 좋겠다,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쩝쩝.


- 저랑 같이 사는 건 어때요?


뭣이? 같이 산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정처럼 가냘프고 사랑스러운 Y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요가를 오랫동안 해온 Y는 몇 년간 혼자서 전 세계를 여행하기도 한 아주 멋진 청년이다.


40대라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젊고 풋풋한 외모이건만,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주말에는 한라산 등반이나 10키로 마라톤까지 척척 해내는 강인한 만능 스포츠우먼인데다가, 인문학적인 취향도 비슷해서 김연수 작가와 틱낫한 스님의 새 책을 누구보다 먼저 읽고 제주로 내려온 화가 선생님께 소그룹으로 드로잉을 배우기도 한 사이였다.


다정하고 온화한 Y랑 제주도에서 같이 산다고?


벌써부터 잔디마당에 종려나무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타운하우스, 천장이 높은 거실 소파에서 한낮의 햇볕을 쐬며 책을 읽는 Y의 평온한 모습을 필두로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생활 풍경이 눈앞에 촤르륵 펼쳐졌다.

한참 망상에 빠져있는데 뒤늦게 카톡이 울려댔다.     



- 저도 같이 살아야 돼요! 셋이 살 집을 알아봐!! 둘이 아니라 셋이라고!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카톡을 확인하고 다급해진 K였다.


내 망상 속에서 타운하우스 주방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서서 커피를 내리는 K의 모습이 추가되었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K의 겉모습은 한국이지만 사고방식은 미국인에 가깝다.

낙천적이고 대범하고 쿨한, 아주 멋들어진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새벽에 일어나서 해 뜨자마자 조깅을 하고 온 연회색 추리닝 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은 K에게서 활기가 넘쳐난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날, 잔디밭에서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K에게 내미는 나는 아마도 미소를 담뿍 머금고 있겠지..

일반인 텐션의 열 배는 거뜬히 넘는데다가 매사에 낙천적인 K가 함께 한다면 집안에 늘 웃음이 넘쳐날 것 같았다.      


그래, 언니 한 번 믿어봐!     

땅을 파고 한없이 내려가던 내 에너지 게이지가 친구들 덕분에 급속하게 풀충전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집을 알아 보려면, 그것도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한 시절을 보낼만큼 멋진 집을 얻으려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제사모 카페(네이버 카페 '제주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부터 당근마켓, 제주오일장 신문까지 샅샅이 훑어봐야지. 제주시에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에 마당이 아름답고 실내 공간도 널찍하고 쾌적해야만 해!


각자의 프리이빗한 생활도 중요하니까 채광이 풍부하고 전망 좋은 방도 세 개 있어야 하고, 화장실은 최 소 두 개 이상, 천장이 높고 샹들리에 조명이 빛나는 거실에 바 형태 의자가 있는 아일랜드 식탁도 있어야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검색신공으로 반드시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의욕을 불태우면서

제주에서 친구들과 같이 살 집 찾기 프로젝트 1일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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