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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Nov 17. 2023

첫 번째 타운하우스, 다가오는 현실자각타임

방 3, 화 3, 플러스 자쿠지 있는 집의 레알 실상이란?!

부동산과 통화를 마치고 호기롭게 앞장을 섰다.

- 106호라니깐 저기쯤이겠다.


보슬비가 내릴락 말락 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다.




비탈진 언덕에 위치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타운하우스 단지 골목길은 좁고 구불구불했다.


솔직히 첫인상이 별로 안 좋았다.

인터넷에 올라왔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이층 집은 온데간데없고 마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좁은 땅에 똑같은 모양의 회색 콘크리트 이층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 우린 셋 다 차 있는데 여긴 주차하기 힘들겠다.

긍정바이러스 K가 뜻밖에 날카로운 현실을 지적했다.


- 난 출퇴근 안 하니까 좀 먼 데다 세워도 돼.

말 나온 김에 어떻게든 친구들과 살고 싶었으므로 일단 밀어붙였다. 당장 없어 보이더라도 급한 사람이 나였다.  

세상만사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장점이 크다면 단점은 감수할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한 번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으므로 사소한 불편은 눈감아버릴 생각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비번을 누르고 집 안에 들어가는 순간 솔직히 셋 다 터져 나오는 실망을 삼켜야만 했다.


- 여기 잔디밭은 강아지 오줌 누는 화장실 만하네요!

거실 창밖을 보던 K가 여유 있게 씩 웃었다.

역시나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K다웠다.

우리도 따라서 실실 웃으며 집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긴 안 되겠다’ 판단이 순식간에 끝났다.

남아있는 선택지들이랑 비교도 할 겸, 기왕 온 김에 어떤가 본다는 식으로 둘러보는 시늉만 했을 뿐.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이라고 해봤자 가파른 언덕길에 우중충한 회색 건물들 뿐이었다.

지은 지 몇 년 안 된 신축임에도 정이라곤 안 가게 좁은 땅에 옹색하게 지어놓고 그냥 비워 둔 집에서는 사방에서 찌든 곰팡내가 풍겨왔다.


사진상으로는 분명 ‘위대한 개츠비’ 영화에 나오는 번쩍번쩍한 대저택 같아 보이던 부엌은  실제로 보니까 식탁 놓을 자리도 부족해서 아일랜드 식탁을 빙자? 한 세라믹 싱크대에 바 의자를 몇 개 갖다 놓은 거였다. 이층까지 뚫린 거실은 면적 자체가 좁은데 층고만 뻥 뚫려있는 게 더 어색했다. 아늑한 느낌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레알 현실이란 게 이런 건가.


책이 가득한 서가에 햇볕이 좍 쏟아지는 거실 소파를  친구들과 하나씩 차지하고 가끔씩 차를 마시다가 웃다가 떠들다가 하는 풍경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거였나.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실망감이 가득 차왔다.

셋은 따로 돌아다니면서 방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각자 생각에 잠겼다.


일단 안방에만 붙박이장이 있어서 간단한 옷 수납이 가능했다. 나머지 방 두 개는 침대 하나 놓으면 꽉 찰 만큼 방이 작았다. 세 번째 방은 골방으로 쓰는 건지 창고처럼 텅 비어 있었다.  


생판 남인 친구들과 한 집에서 산다면 프라이빗한 공간이라면 침실뿐인데, 이런 골방을 개인공간으로 삼아  지낼 수 있을까?

글쎄.

그보다도 여자 셋의 사계절 옷과 가방 등을 비롯한 개인 물건 수납은 대체 어디다가 한단 말인가.


- 옷장 같은 건 사면 돼.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내 말을 받아서 Y가 상냥하게 말했다.

- 매트리스는 제 것 가져오면 돼요.     


한 집에서 살아보자고 단톡방에서 수다를 떨 때, 방은 제비 뽑기 해서 정한 후에 한 달에 한 번씩 옮기자고 했었다. 방마다 컨디션이 다를 텐데 누구는 널찍하고 전망 좋은 방을 차지하고 누구는 비좁은 방을 차지한다면 무척 속상할 테니까.

처음엔 맏언니이자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내가 월세를 더 많이 부담하고 큰 방을 차지할까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었다.

입장을 바꿔서 나한테 돈을 적게 내는 대신에 비좁고 후진 방을 쓰라고 한다면 정말로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애매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쪽이 돈을 더 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매사에 서로 양보해야 공동생활이 지속될 수 있다. 비용과 편익은 어디까지나 1/N로 공평하게 분담하는 게 맞았다.     


-오, 여기 자쿠지가 있긴 하네요.

Y가 우중충한 욕조를 보면서 조금 웃었다.

웃음의 의미는 뻔했다.

잡지화보에 나오는 노천 히노키탕을 상상했건만 물 빠진 나무욕조는 폐자재가 너저분한 공사장을 연상하게 할 만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 과연 저걸 쓸까요?

K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K는 사실 굉장히 깔끔한 성격이었다.

퇴근하면 날마다 청소를 하고 물건 하나하나를 분해해서 닦고 재조립하기까지 한다고 했으니까!

 

한밤중에 아로마 향초를 켜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반신욕 하는 Y의 상상과, 물이 사방으로 흥건하게 튀고 물때가 낄 나무 욕조 따위 그냥 없애버렸으면 K의 상상이 스파크를 튀기며 격돌했다.

동상이몽이 깨지는 게 눈앞에 만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듯했다.


이래서 같이 사는 게 만만치 않구나.

온화한 Y와 긍정적 에너지 넘치는 K와 글쓰기 외에는 죄다 아무래도 좋은 내가 분위기 좋은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도 즐겁기만 했는데.

아쉬움을 뚝뚝 흘리면서 밤늦게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러다가 한 집에 같이 살까 하는 말까지 나왔는데...

진짜로 한 집에 사는 실제 생활은 또 다를 거였다.


글 쓴답시고 나는 전망 좋은 방은 포기 못할 테고, 수면 시간이 불규칙하므로 밤늦게까지 거실과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부스럭거리다가 어떤 날은 제풀에 훌쩍거릴지도 몰랐다.

감수성 풍부한 시인인 Y는 자쿠지 주변에 아로마 향초를 켜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느라  온수를 계속 계속 줄줄 틀어놓을지도 모르고.

깔끔한 K는 이 언니들은 왜 이렇게 더러운 걸까, 매일매일 넓은 집을 다 청소하느라 진이 빠져버린 어느 날, 같이 살자고 했던 자기 입을 확 꼬매버리고 싶을지도 몰랐다.    


눈에서 꿀 떨어지게 사랑하던 커플도 결혼해서 살다가 갈라서고 속 시원해하는 이유가 다 있지 않겠는가.

서서히 찾아오는 현실자각을 나는 그 자리에서 모르는 척했지만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 여긴 이만하면 다 봤으니까, 다음 집에 가보자.      


그래도 벌써 포기할 수 없었다.

부동산에서 알려준 주소를 톡방에 공유하고 다음번 집을 보러 가기 위해서 각자의 차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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