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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Nov 10. 2023

친구들과 제주도 이층집 단독주택을 보러갔는데...

저 푸른 언덕위에 그림같은 집에서 살 꿈에 부풀었건만

부동산 사이트에서 '타운하우스 임대' 게시글을 찾는데 시작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지는 못할지언정 월세로라도 잔디 마당있는 이층집에 살아보다니, 이번 생에 그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기억하는 한 살았던 집은 수십년 전 오층짜리 아파트부터 시작해서 고층아파트까지 다양한 평수의 아파트였다. 아파트 외에서는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집을 떠나서 대학 기숙사로 갔을 땐 방 하나에서 네 명이 같이 지냈다. 핑크색 나일론 커튼으로 가린 이층침대 안이 유일한 개인공간이었다. 그 후로 서울살이에서는 혼자 사는 원룸도 감지덕지했고 삼십대 사십대에도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게 그냥 과분한 거였다.

금지된 것을 원하듯, 정원있는 집에 살아보길 바랬건만 저 푸른 초원 위에 주택은 종이학으로 접은 색종이 안쪽에 남몰래 적어넣은 꿈만 같았다.


제주도로 내려와서야 처음으로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었다. 주인집과 마당을 공유하는 별채건만, 시야가 탁 트인 잔디마당과 데크가 있는 집에서는 심심하게 보내는 일상도 좋았다. 마당 보다가 글 쓰고, 마당에서 책 읽고 마당 쳐다보면서 커피 마시고.

헌데 그 좋은 오두막집 주인이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는거지!


혼자 사는 주제에 마당 있는 이층집은 과분할거라 여겼는데, 친구 두 명과 함께라면 얘기가 달랐다.

술집가서 혼자서 메뉴 하나 시켜놓고 술 마시는 것과 세 명이 안주 세 개 골고루 시켜놓고 술마시는 거랑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는가. 아니 훨씬 폼나고 근사하지 않겠는가.


월세 오륙십 만원으론 원룸 아니면 기껏해야 투룸이지만 셋이 월세를 합치면 한 달에 백오십만원에서 이백만원, 궁전같은 저택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인터넷을 뒤져기 시작했더니 온갖 다채롭고 풍성한 조합의 선택지가 펼쳐졌다.     


일단은 제주시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이 출퇴근 가능한 거리여야 했으므로 애월읍 주변으로 범위를 좁혔다.

제주공항에서 이십킬로미터 이내  차로 삼십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로.

월세도 비쌀수록 집이 더 좋기야 하겠지만 큰 차이 없을수도 있으므로 연세 -일년치 월세- 이천만원 선 이내에서 골라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찍은 집은 풀옵션 이층집에 방이 세 개, 화장실도 세 개, 한 달 월세는 백오십만원이었다.

사진으로 보기에 마당이 좀 작은 듯 했는데, 대신에 실내에 중정이 있고 프라이빗 히노키 노천탕도 있다고 했다.

다른 타운하우스 후보 두 곳은 침실 세 개에 화장실은 두 개 뿐이지만 대신에 마당이 조금 더 넓은 것 같았다. 먼바다가 보인다는 곳도 있었다. 연세는 천육백만원, 천팔백만원 정도로 큰 차이는 없었다.


직장인 친구들과 집을 보러 다닐 시간을 맞추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하루 안에 괜찮은 집을 싹 다 둘러보고 그 자리에서 결정을 해버리기로 했다.


경험상 집 구하는 일이나 여행 떠나는 건 오래 끌면 파토나거나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농담처럼 던졌던 말일수도 있지만 정말로 같이 살 집을 알아보기로 하면서, 친구들과 같이 살면 누릴 수 있는 장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이자 대단한 축복이다.

거기에 더해서 같이 살아본다는 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인연이다. 이성이냐 동성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단 일 년을 같이 살더라도 결혼해서 몇십년 간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것보다 더 빛나는 순간을 공유할 수도 있다.


'친구들과 집 구하기'에 있어서 경제적인 이득은 제쳐두기로 했다.

제주도에 내려와서 사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돈을 아끼려고 살림을 합친다는 건 결과가 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편하게 혼자 사는 것 보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기쁘고 특별한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 가능한 좋은 장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타운하우스 세 군데를 가 보기로 했다.

부동산에서도 거리상 멀지 않은 곳이므로 가능하다고 했다.     


헌데 당일 오전에 담당 부동산 실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 못 나갈 것 같은데, 다음에 뵈면 안될까요?’     


허걱, 이게 웬 말이랍니까ㅜㅜㅜㅜ

살다보면 몸이 아픈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고, 약속을 미룰 수도 있는 거지만 친구 셋이서 같이 살 집 보러 다니려고 직장인들이 토요일 하루를 비웠는데.     


‘다른 실장님께 부탁드릴수 없을까요?’

‘다들 일정이 있다고 하셔서요’

‘그러면 영상통화하면서 비번 알려주시고 나중에 바꾸시면 안될까요?’     


담당 실장은 일단 주소를 알려줄테니까 가보라고 했다. 비번은 나중에 상의해서 알려주겠다고.




약속 시간인 두 시.

바로 앞에 Y의 남색 소형 SUV가 보였다.

- 언니들, 저는 도착했어요, 근데 여긴 차 세 대 세울 곳이 없네요.

K의 카톡도 울렸다.

타운하우스 단지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가서 작은 공터에 줄줄이 차를 세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셋이서 얼굴을 맞대고 스피커폰 모드로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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