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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Dec 01. 2023

제주도 타운하우스 매수는 위험천만?

자칫하면 폐허로 방치되는 분양형 타운하우스

두 번째 타운하우스를 보러갔어요.


경사진 옹벽을 따라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단지 초입에 들어섰을 때는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어요.

어스름이 깔릴 무렵, 낯선 동네에서 큰 덩치의 맹견 여러 마리가 짖는 소리는 사뭇 위압적이었답니다.  

    



헐, 이런 데가 타운하우스라고?     


건축 연도가 2018년이었는데 외벽의 흰 페인트가 너덜거리는 게 지은 지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었어요.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듯, 안쪽으로 갈수록 빈 공터에 건축자재 같은 것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기도 했어요.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막다른 길까지 들어갔는데, 가장 안쪽 집에는 동물원 우리처럼 생긴 커다란 철망이  있었답니다. 맹견들이 으르르컹컹 짖는 소리는 바로 거기서 들려왔어요.


단독주택에 살면서 기르는 개들을 책임지는 개 주인이란 물론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으르렁대며 날뛰는 맹견들이 지척에 있는데 벌벌 떨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답니다.

그래도 일단은 나란히 차를 세운 Y와 같이 부동산에서 알려준 집 주소로 갔어요.

이번 집에는 살고 계신 분이 계시므로 벨을 누르고 집 보러 왔다고 하면 된다고 했어요.      


마당에 잡초가 허리까지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서 과연 이 집이 맞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벨을 눌렀어요.

든든한 친구들이 둘이나 함께 있어서 참 다행이었지요.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가면처럼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분이 문을 열어주었어요.


‘실례지만 집 좀 보겠습니다!’


기 죽지 않으려고 화장품 팔러 온 세일즈맨처럼 기운차게 인사하면서 집 안으로 한 발 들여놓았어요.


하얀 세라믹 타일 바닥에 카펫을 덮어놓은 거실을 둘러보고 한 단 높은 싱크대와 주방도 보고 안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사람이 있었어요.


허걱! 잠옷 바람의 중년 남자였어요.


당황스럽고 놀라운 마음에 이 층부터 보고 내려오겠다고 방을 나갔어요. 친구들도 우르르 나를 따라서 발끝을 들고 이 층으로 올라갔지요.

이 층에도 방이 두 개 있고 테라스도 있었어요. 집주인이 예전에 골프 연습을 했는지 가벽을 쳐서 천장까지 막아놓고 인조잔디를 깔아 놓았더군요. 사용한 지 오래된 창고처럼 어두컴컴한 게 으스스하기만 했답니다.     

그나마 이 층에 있는 침실 두 개는 방 크기가 적당했어요.

주니어용 침대와 텅 빈 책상, 옷장도 있었어요.

제주도에서 스위트홈을 꿈꾸며 타운하우스를 분양받았던 가족이 사정이 있었는지 가구를 죄다 남겨놓고 급하게 빠져나간 자리 같았지요.

       

- 여긴 아까보단 방이 크네요. 이 정도 크기는 돼야 하는데.

- 베란다 꾸며놓고 골프연습 하셨나 본데, 우리는 창고로 써도 되겠다.

- 책상이랑 침대는 다 놔두고 가는 걸까요?      


실망한 기색을 숨기면서 시치미를 뚝 떼고 겉으로는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지요.

솔직히 하나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초반부터 어린애처럼 싫다고 떼를 쓸 순 없었잖아요.


어차피 현실이란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는데

잘 꾸미면 괜찮을 수도 있는데,

나 말고 친구들 마음에는 들 수도 있는데,

섣불리 초를 칠순 없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 봐도 집이나 동네 분위기가 굉장히 찜찜했답니다.

한때는 누군가가 가족들과 취향껏 잘 꾸며놓고 살았던 공간이었을 텐데 무슨 사정이 있어서 가구를 다 남겨두고 떠났는지, 몰락한 분위기가 역력했거든요.


먼지가 앉은 골프 연습 퍼팅장도,

핑크색 파스텔톤이 더 어색해 보이는 주니어용 가구들도,

집주인은 아닌 게 분명한 짙은 화장에 인조 속눈썹까지 붙인 여자와  늦은 오후에도 누가 오건 말건 잠옷 바람으로 누워있는 남자도,

결정적으로는 마당에 우거진 무성한 잡초들과 페인트가 떨어진 건물과 폐자재가 널려있고 맹견들이 날뛰는 동네까지도 말이에요.     


일 층으로 내려와서 안방에 들어가니까 아까 그 남자는 아예 침대에서 드러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더군요. 편하게 보라고 웃으면서 이불을 덮고 일어나지도 않았어요.

무려 여자 셋이 방에 들어와서 가구와 옷장을 구경하고 화장실 문도 열어 보는데도.


집 잘 봤다고, 쉬시는데 실례 많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휴우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Y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외국인인가? 집주인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했어요.

‘누워서 안 일어나는 분은 처음 봤다’며 K도 혀를 내둘었어요.

저는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다가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답니다.

- B급 액션 영화에서 봤던 거 있잖아, 도피 중인 조폭과 그 애인 업소 여성 같았어.


친구들도 한편으론 어이없어하면서 다같이 웃었어요.

사기꾼 건설업자가 한탕 해먹고 날라버린 자리에 행동대장인 그 아우도 마침 사고를 치고 피신 중이랄까,

대형 철망 우리에서 맹견들이 날뛰고 짖어대는 으슥한 타운하우스 단지도 그런 분위기에 아주 딱!이었답니다.


제주도 타운하우스는 잔디 관리비가 백만 원!

           

타운하우스들은 대부분 필지를 분할하지 않고 대지 공유지분 1/N로 하여 집을 다 지은 후에 분양을 한다고 해요. 잔디와 쓰레기 등을 관리하는 공동 관리비를 일 년에 백만 원 정도 따로 받고요.

공동 관리비가 비싼 데다가 대지가 공유지분이므로 건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할 수 없다는 건 타운하우스의 악명 높은 단점인데요, 그 대신에 단지 전체의 외관을 비교적 깔끔하게 유지할 수가 있답니다.


이번에 간 타운하우스는 건축업자가 대지를 개별 등기로 분양하고 타운하우스 건물만 똑같은 모양으로 지었던 모양이에요.

나름대로 단독주택과 타운하우스의 장점을 결합한 합리적인 사업 구상이기도 한 거지요.

하지만 건물 공사가 부실해서 6년밖에 안된 집 외관이 페인트가 벗겨지고 상태가 엉망이었어요.


건물 외관과 잔디 관리도 안 되므로 흉가처럼 보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어요. 제주도 타운하우스 특성상 세컨드하우스로 사용하면서 실거주 안 하고 비워두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분양이 안 된 집터들도 많아서 벽돌만 쌓아놓은 흉흉한 공터도 여기저기 보였어요.


이번에 느낀 게 제주도 타운하우스들은 공동관리비가 아깝더라도, 잔디나 건물 관리는 공동으로 할 수밖에 없는 듯해요.

내 집 잔디는 깎더라도 다른 집 관리가 엉망이면 타운하우스 단지 전체가 흉흉한 분위기가 되어버리니까요.

     

덤으로

제주도에서 단독주택으로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몇 가지 알려드릴 꿀팁이 생겼어요.


되도록 마을이 자리를 잡아서 이웃집들이 안정적인 동네에 땅을 사서 집을 짓든가, 나름대로 브랜드 있는 타운하우스를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지인이 살았던 '브리타니 타운하우스'는 애월이나 협재 등에 몇 군데 단지가 있는데 건물 상태나 관리가 비교적 잘 되어 있었답니다.

대지지분이 적어서 마당이 좁은 게 흠이지만 건축면적 실평수 30평 기준으로 매매 시세는 3억 전후이니

아쉬운 대로 서울 집값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어요.




이 집을 본 소감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분양형 타운하우스를 덜컥 사는 건 위험천만하다'는 거였어요.


두 번째 집도 더 말할 것도 없이,

만장일치로 불합격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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